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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日나가사키를 가다]세계를 향해 열린 나가사키

입력 | 2002-03-06 13:46:00


《일본 큐수의 서쪽에 있는 나가사키는 1570년 포르투갈인의 방문을 시작으로 쇄국정책이 펼쳐졌던 에도시대(17~19세기)까지 네덜란드·중국 등에 유일하게 개방됐던 항구도시. 옛부터 대륙과 일본을 잇는 창구이자 서양문물이 처음으로 전해진 나가사키는 일본 전통속의 '유럽'과 '중국'을 느낄 수 있는 이국적 어우러짐이 가득하다. 이와 함께 해수·유황 등 다양한 성분의 온천도 체험할 수 있는 오바마·운젠·시마바라까지의 '나가사키 여행'을 떠나보자.》

"채앵~채앵~채앵~"

환한 보름달이 운집한 사람들의 얼굴을 뽀얗게 비추고 만여개의 등불이 거리를 온통 빛으로 물들일때 한마리 용이 여의주를 앞에 두고 음악에 맞춰 힘차게 춤을 춘다.

손에 전통음식이라는 '카스테라'를 든 사람들이 무대가 되어버린 넓직한 다리 위에 둘러앉아 용춤의 현란한 움직임과 고막을 때리는 중국 전통악기 소리에 넋을 놓고 있다.

여기는 중국인가, 유럽인가, 일본인가. 아니다. 여기는 '나가사키'다.

▼일본에서 만나는 유럽과 중국 그리고 역사▼

일본 나가사키 공항

안개가 자욱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후 점심식사로 제공되는 '국적불명'의 도시락을 먹고, 기내에서 나눠준 일본 출입국신고서 작성이 끝나자마자 도착한 나가사키 공항. 1시간 20분이 걸렸다.

나가사키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눈에 띄인 것은 공항 복도 유리창의 중세 유럽풍 스테인 글라스 장식이었다. 공항을 떠나 시내로 들어서는 길거리 곳곳에도 스테인 글라스 장식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중국색 완연한 란탄 페스티발

숙소에 여장을 풀고 처음 찾은 곳은 나가사키의 대표적 겨울 축제로 중국색 완연한 '란탄 페스티발(연등축제)'. 날개달린 말, 나는 용 등 갖가지 동물모양의 크고 화려한 연등 모형 옆에서 중국 전통의상을 빌려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 축제는 중국의 설날에 맞춰 약 보름간 진행된다.

"나가사키는 일본에서도 가장 버라이어티(variety)한 도시입니다.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바로 전통이 되는 곳이지요"

나가사키에 대한 카츠오 미우라 나가사키시 관광부장의 간결한 설명은 여행내내 귓가를 맴돌며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나가사키 여행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문화 찾기, 네덜란드 중심의 서양문물과의 교류흔적 찾기, 그리고 1945년 원폭투하와 관련된 장소를 둘러보는 세가지 주제별 코스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여행장소가 주제별로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은 아니므로 지도를 참조해 효율적인 동선을 잡고 이동해야 한다.

△공자묘·차이나타운△

공자묘의 웅장한 사당

옛날 나가사키는 조그마한 바닷가 외진 마을로, 해변에는 작은 어촌들이 있고 경작지도 빈약하여 산을 깎아 농경지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와 아시아와 유럽상인들이 드나들며 국제적인 교역이 시작됐고, 이때부터가 나가사키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나가사키와 중국의 무역이 이뤄진 것은 40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자를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중국의 학자들은 나가사키를 교두보로 삼아 점차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도시에 남아있는 장엄한 분위기의 공자묘, 중국 특유의 붉은 깃발과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차이나타운 등은 이곳을 찾아 정착한 중국인들의 역사적 유산이다.

오란다 언덕 근처의 공자묘는 109년전 화교들이 중국의 공자를 신으로 모시고자 만든 공자의 사당이다. 명치유신때 폐지됐던 공자묘는 중국 정부의 노력과 나가사키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의 출자를 통해 3300㎡의 부지에 복건성, 타이완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중국 남부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일반에 공개된지는 40년밖에 되지 않았다.

공자상과 위패가 모셔진 사당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공자의 3000여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던 72인의 제자상이 도열해 있다.

공자묘를 둘러싼 벽에는 논어 1만6018자가 대만 화련산 대리석 500여장에 조각돼 있다.

스스로 '중국 국적의 중국인'이라고 소개한 안내원은 "동경에 유학 온 중국학생들이 찾아와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반감을 느낀 반면 나가사키에서는 전혀 이질감을 느낄수가 없다고 말한다"며 타국에서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는 뿌듯함을 내비쳤다.

사당 뒷편으로 마련된 박물관에는 중국에서 직접 빌려온 국보급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단, 유리관에 속에 들어있는 것만이 진품.

공자묘를 둘러본 후 이시바시역에서 전차로 네 정거장 정도가면 차이나타운의 입구인 중화문이 보인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중국식당과 상점가를 둘러볼 수 있으며 물건이나 음식은 그다지 싼편은 아니다. 차이나타운의 식당가에서는 '나가사키 짬뽕'을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구라바엔△

나가사키의 위치(클릭하면 큰 지도를 볼수 있습니다)

나가사키 사람들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은 각별하다. 특히 개항 이전 일본을 찾아온 외국 거상들에 대한 '예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

사계절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며 나가사키 항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3만3000평의 부지에 영국상인 토마스 글로버의 목재저택을 복원한 구라바엔(구라바 공원)을 보면 다소 어색하기까지 하다.

저택의 거실에 전시된 수십점의 어탁(魚拓)을 보고 장난삼아 던진 "이건 아마 구라바씨가 잡은 고기인가 보죠?"라는 질문에 안내원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18~9세기의 서양문물과 외국인들의 생활양식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복원해 놓은 구라바 저택은 1863년에 완공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양옥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으로 유명한 이 공원에는 푸치니와 '나비부인'역을 맡았던 미우라 다마키의 동상이 있다.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일본 최초의 미쯔비시 조선소에는 현재 영국의 의뢰로 건조중인 최대 승선인원 3100명의 세계 최대여객선의 몸체를 볼 수 있다.

나가사키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인 이 공원에는 현재 7000만명이 방문했으며, 연간 13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데지마△

새롭게 복원된 데지마의 건물

'일본인 출입금지'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1641년부터 218년간 네덜란드-일본간의 유일한 무역창구였던 데지마는 그리스도교의 확산을 막기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외국인 경제특구였다.

데지마는 쇄국정책하에서도 일본과 교역을 한 네덜란드 상인들을 격리하기 위해 항구쪽에서 돌출한 곳에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진 인공섬이다.

육지와 접한 정문에는 엄격한 통제가 이뤄졌으며, 네덜란드 상인들의 출구인 수문에는 많은 상선들이 정박했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주로 직물, 설탕, 약품과 천체망원경 등의 과학문물을 가져왔으며 일본에서는 금과 은 등을 수출했다.

현재 1/50로 축소된 미니 데지마와 실물크기 5채의 건물이 복원돼 있는 데지마는 200년전 일본과 네덜란드의 교역물품과 당시의 모습이 담긴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이 때 수입품을 담았던 유리품들은 이후 일본 유리공예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데지마로 이어지는 다리 밑을 흐르는 물은 꽤나 깊어 보였지만 그 맑기가 시냇물과 같아 특히 한국 관광객들의 부러움을 샀다.

△평화공원·원폭자료관△

원폭자료관에 전시된 폭발당시 멈춘 시계의 유리벽에 맞은편에서 상영중인 폭발당시 버섯구름이 비춰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1910(명치43)년 8월 22일 일한병합조약으로…(중략) 자유, 인권, 귀중한 토지마저 빼앗겨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패전당시 강제로동으로 끌러온 2만명이 피폭당했으며, 그중 1만명이 폭사했다. -평화공원 구석의 한국인추도비건립 안내문 중에서'

1945년 8월 9일 11시 02분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맨(FAT MAN)'이라고 불리는 원자폭탄은 7만여명의 생명을 빼앗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을 내렸다.

마츠야마쵸 전차역에 내려서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원폭투하 당시 폭발의 뜨거운 열기로 물을 애타게 찾으며 숨을 거두어간 사람들의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평화의 샘에 도착한다.

'나가사키에는 오늘도 비가 내렸다'라는 일본 노래가사처럼 비가 잦다는 이 도시에서 흔치않게 맑고 청명한 봄 날씨가 펼쳐지고, 평화의 샘에서 솟아오르는 분수의 물줄기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걸쳐있었다.

평화의 샘 분수 너머에는 1955년 나가사키 출신의 조각가 키타무라세이보우에 의해 조각된 높이 9미터의 평화기원상이 보인다.

하늘을 향한 오른손은 '원폭에 대한 두려움'을, 수평으로 펼친 왼팔은 '평화'를,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에 대한 추모'를 나타내는 이 조각상의 좌우에는 '기원'의 상징인 종이학 수만마리가 피해자들의 명복을 기리고 있다.

원폭낙하 중심지를 지나 조금 떨어진 곳에는 원폭의 참상을 실감나게 전해주는 원폭자료관이 자리잡고 있다.

폭발 당시인 11시 2분에 멈춰진 시계와 불에 탄 아이들의 시체 사진 등 참혹한 광경이 그대로 전시된 자료관에는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박민규씨, 대한민국 양석주씨 등 4명의 한국인 피해자의 증언을 TV화면을 통해 들을 수 있도록 돼 있다.

"나는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잠깐 번쩍하는 빛이 일어난 뒤 모든게 불탔다. 불탈뿐이다.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자료관에서 만난 나가사키신문 기자는 자료관을 관람한 느낌을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다음날 나카사키 지역신문에는 "한국기자는 원폭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그로인해 조선은 해방됐다. 복잡한 감정이라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볼거리·먹을거리△

■전차 - 나가사키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전차. 1911년 제작된 구식전차까지 4개의 노선이 도시를 가로질러 달린다. 100엔의 요금으로 종점에서 종점까지 갈 수 있다.

■페론경기 - 나가사키에서만 볼 수 있는 일종의 조정경기. 중국풍의 배에 최대 28명이 탑승해 북과 징소리에 맞춰 경기를 펼친다. 나가사키에선 매년 6월에서 8월까지 대회가 개최된다.

■펭귄수족관 - 세계 최고수준의 펭귄전문 수족관이라고 알려진 이 나가사키 펭귄수족관. 7종 118마리의 생활모습을 가까이서 직접 관찰할 수 있으며, 세계 최장수(39세) 펭귄으로 기록된 '긴키치'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편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나가사키 짬뽕 - 차이나타운의 중식당 어디에서나 맛볼수 있는 나가사키 짬뽕은 우리나라 짬뽕의 맵고 얼큰한 맛은 없지만 풍부한 해산물이 들어 있어 영양은 만점.

■싯포쿠요리 - 쇄국시대에 내항한 중국인에 의해 접객요리로서 전해진 요리에 전통맛과 서양맛을 더해 독특한 요리가 생겨났다.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연회상 차림.

△여행정보△

■항공 - 대한항공이 주 2회(월,토) 운항. 1시간 20분 소요.

■나가사키 공항에서 나가사키 시내까지 직행버스 약 55분 소요.

■여행자료 - 나가사키현 서울사무소(www.nagasaki.or.kr) 02-399-2190~5

나가사키현(일본)=최건일 동아닷컴기자 gaegoo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