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백련사
《춘삼월의 꽃노래 부름은 아침 해에 어둠 사라지듯 자연스러운 일. 허나 고대하는 꽃소식은 더디고 마음은 급하여 성마른 이 발길은 벌써 땅끝 해남으로 치닫는데…. 파릇파릇 풀잎 향기 싱그럽고 언땅 녹아 보드라운 언덕받이 양지녘에 아지랑이 피던 어느 봄날. 동백 흐드러지게 핀 ‘남도 답사 일번지’ 대흥사와 언덕너머 백련사의 봄풍경은 또 어떠할 지.》
밤새 차를 달려 내려간 해남땅. 천년고찰 대흥사(전남 해남군 삼산면·일명 대둔사) 깃든 땅끝 두륜산(도립공원)에 당도하니 아직도 깜깜한 새벽 5시. 잠시 눈을 붙이다 절문 여는 7시, 경내로 들어섰다. 빨간 동백꽃이 벌써 떨기채 후두둑 떨어질 만큼 봄기운 완연하건만 그래도 새벽 찬기운은 무서리 겨우 면한 초겨울에 뒤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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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에 버무린 만덕산 솔잎차 향기 독특
봄날 아침 대흥사를 새벽 안개가 가렸다. 잿빛 안개 사이로 보이던 고색창연한 당우. 두 무채색의 조화가 가람의 무게를 더했다. 물가 채미밭의 푸른 잎 배추는 봄기운에 생기가 돌았고 대숲 푸른 잎도 안개비에 젖어 싱그러웠다.
▼경내엔 茶聖 초의선사 동상
대흥사 경내에 있는 한국의 다성 초외선사의 동상
그러나 수행도량의 봄은 자연의 변화에 있지 않다. 춘색 도도해도 용맹정진중인 선방 수행자의 결가부좌를 풀지는 못함이라. 올해도 대흥사의 봄은 범종각에 내걸려 있었다. 동안거(冬安居) 결제(11.19-2.26)가 끝났음을 알리는 현수막. 그렇다. 수행승의 봄은 동안거 해제와 함께 비로소 온다.
경내를 거닐다 보면 서산대사 사당인 표충사 앞에서 죽장자를 어깨에 걸친 채 앉아 계신 노스님을 뵙게 된다. 한국차에 관한 명저 ‘동다송’(東茶頌)을 쓴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년)의 동상이다. 대흥사와 근처 일지암에서 수행하며 사라져가던 한국차의 정신과 맛을 중흥시키고 선다일미의 정신과 맛을 오늘까지 이어준 선사. 그 업적은 동상 앞에 새긴 몇 줄의 짧은 글 뿐만 아니라 매일 마시는 녹차에 녹아 있다.
한국 차(茶)의 고장 해남. 예로부터 좋은 차는 바닷가 근방에서 아침안개가 자주 끼는 대나무 많은 산에서 난다 했거늘. 야생 차나무가 자라는 대흥사 주변은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덕택에 다성까지 배출한 한국차의 성지가 됐다.
해남에서의 차 이야기라면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을 빼놓을 수 없다. 다산이 차를 접하고 ‘다산’이라는 호를 얻게 된 것은 지척의 강진땅에서 보낸 18년간의 귀양살이때. 거처(다산초당)인 만덕산 아래 백련사의 혜장스님(1772∼1881년)을 만나 차도 배우고 호도 받았다. 그리고 초당에서 추사(김정희) 초의선사와 교우하며 500여권에 달하는 저서를 집필했다.
▼솔방울로 불지펴 차 끊이던…
다산초당(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은 대흥사에서도 멀지 않았다. 입구의 ‘다산 유물전시관’에서 산중턱의 초당까지는 800m. 마을 지나 대나무 동백나무 소나무 우거진 숲길로 잠시 오르니 숲그늘 짙은 산중턱에 있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저술 500여편을 집필하며 실학을 집대성했던 이 곳. 그러나 초당은 너무나 소박했다.
제자들의 거처 서암(西庵) 오른편에 초당이 있고 그 오른편 동백나무 그늘 아래연지(蓮池)가 있다. 연못에는 조막돌을 산처럼 쌓은 연지석가산(石假山)이 있다. 연못은 나무대롱으로 끌어 들인 샘물의 추락으로 만들어진 ‘비류폭포’의 소(沼)가 되는 셈. 수면에는 동백꽃이 떠 있었다.
오른편 산길로 스무발자국 쯤 가면 동암. 수 많은 저술이 집필된 곳이다. 여기서 몇발작만 옮기면 강진만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 그 옆 천일각은 흑산도에 유배된 둘째형 정약전과 가족이 그리울 때면 찾던 곳에 세운 정자다.
초당앞에는 평평한 바위가 하나 있다. 부뚜막 삼아 청동화로 올려 두고 솔방울로 불을 지펴 차를 끓이던 반석 ‘다조’(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