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인 내가 생각해도 SBS ‘도전 1000곡’은 참 웃기는 프로다. 세상에 노래를 부르는데 오직 가사만 심사하다니? 가사 한 소절씩 두 번 틀리면 가차없이 땡! 그러나 너무도 간단한 이 규칙 때문에 보는 사람이나 노래하는 사람이나 모두 울고 웃는다. ‘도전 1000곡’은 출연자에겐 참 고역이다. 우선 노래 1절을 끝까지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제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연습은 필수다. 그러다보니 대개 연습할 기간을 충분히 두고 섭외한다. 이번 설특집에서 우승한 노현희도 처음 출연할 땐 두 번이나 녹화날을 미뤘었다.
신세대인데도 옛날노래까지 훌륭히 소화해 우리를 놀라게했던 그룹 ‘샤크라’의 황보, 자두, ‘신화’, ‘베이비복스’의 간미연, 강성훈, 이혁재 등은 출연을 앞두고 아예 노래책을 끼고 살았다. 연습은 비단 신세대 뿐만이 아니었다. 강부자, 문희옥, 김연숙은 신세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래지도까지 따로 받았다고 한다. 가수가 아닌데도 우승한 조형기, 윤기원, 이종희, 이상인, 최상학도 모두 연습의 결과였다. 녹화 당일 분장실은 진풍경을 이룬다. 곳곳에서 마무리 연습을 하는 연예인들의 모습 때문이다. 오히려 실력있는 선배들이 신인보다 더 떤다. 괜히 제작진에게 앓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그들이다. 실제로 1000곡을 안다는 ‘유리상자’도 노래 부를 때는 마이크가 부들부들 떨린다. 이렇게 긴장하다보니 1차전에서 불합격했던 ‘대가’들도 많다. 김수희, 최진희가 그랬고, SBS에 10년 만에 처음 출연한 가수 박일준이 1차전에서 탈락한 것이다. 너무 긴장해서 잠도 제대로 못잤다는 왕년의 스타였는데….
아는 노래를 틀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본인이 직접 작곡했던 ‘몰래한 사랑’을 못부른 전영록, 리메이크해서 본인 앨범에 수록한 노래 ‘내일을 기다려’를 틀린 김정수, 매일 밤무대에서 부르던 노래 가사를 긴장한 나머지 잊어버린 박일준이 그랬다. 노래를 부르다 틀리면 아쉽기도 하지만 정말 화도 나는 모양이다. 진미령은 2차전에서 탈락하자 그냥 집에 가버리는 걸 제작진이 겨우 붙잡았고, 양택조, 이무송은 틀린게 아니라고 우겼고, 심지어 ‘UN’은 노래책까지 내밀며 항변했다.
명승부도 많았다. 방송 시간 관계상 편집을 해야하기 때문에 모두 보여줄 순 없었지만 문희옥은 질긴 승부사로 유명하다. 강부자와의 대결에선 무려 40여분이 걸렸는데 연륜 많은 강부자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을 정도였다. ‘샤크라’와도 40여 분이 걸렸는데, 안타깝게도 문희옥이 모두 졌다. 노현희와 ‘유리상자’의 대결은 더 압권이었다. 무려 1시간 이상이 걸렸고 스태프들이 지쳐도중에 10분간 쉴 정도였다.
이동규 SBS ‘도전1000곡’ 담당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