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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차이나 리포트]개방위기 닥친 중국농촌

입력 | 2002-03-07 17:31:00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함에 따라 일부 산업이 단기간내에 심각한 도전과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올해 정부의 업무는 아주 어려울 것이며 우리의 책임은 중요하고 영광스럽다.”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는 5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5차 회의 정부공작보고를 통해 WTO 가입에 따른 충격을 이같이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 총리는 올해 8대 정부 과제를 제시하면서 두 번째 과제로 농촌 개혁을 꼽았다. 8대 과제의 첫 순위가 고속 경제성장을 지속하겠다는 의례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 지도부가 농촌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중국은 WTO 가입에 따라 2006년부터 농업을 완전 개방하도록 돼 있다. 관세로 자국 농업을 보호할 수 있는 유예기간이 4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쌀 밀 콩 옥수수 서류(薯類·감자 고구마) 등 5대 곡물 가운데 중국이 유일하게 국제경쟁력을 갖춘 작물은 쌀 뿐이다. 쌀은 80kg 한 가마에 2만5000원 가량으로 미국산의 70% 수준. 그러나 나머지 작물들은 2006년 이후 값싸고 질좋은 외국산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쌀을 제외한 다른 작물의 경우 매년 1000만t 안팎을 수입하고 있다. 전체 생산량에 비하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총량으로 볼 때 세계 최대 농산물 수입국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한 중 일 3개국 순방에 앞서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WTO 가입으로 미국산 콩과 쇠고기 등 농산물이 중국 시장에 들어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이두섭(李斗燮) 농협협동조합중앙회 중국사무소 수석대표는 “중국이 매년 5억t 가량의 식량을 생산하지만 상품가치가 있는 것은 전체 생산량의 5%에 불과하다”며 “중국 농산물이 수입산에 밀리지 않으려면 영농기술의 개량과 유통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다만 농촌에서는 아직 WTO 가입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 농사 내가 지어먹고 사는 데 큰 영향 있겠느냐.”

중국 최대 곡물생산지인 허난(河南)성의 신샹(新鄕)시 위앤양(原陽)현 챠오베이(橋北)향 난관(南關)촌에서 만난 농민 궈쓰지에(郭世杰·33)는 중국이 개혁 개방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농촌에서 변한 게 아무 것도 없는데 WTO에 가입했다고 새삼 무슨 특별한 변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가 농촌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동안 중국 경제성장의 기반을 농촌이 담당해왔고, 농촌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사회 안정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중국은 1940년대 사회주의 혁명을 농민에 의존했고, 정부 수립후 경제발전을 위한 공업 자본을 농촌에서 이끌어냈다. 이른바 공산품과 농산품과의 높은 가격 격차로 이끌어낸 자본을 공업 발전에 전용했던 것. 그러나 경제발전에 따른 과실은 전혀 농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인구의 절반 가량인 6억명이 농업인구로 분류되지만 이 가운데 3억여명은 사실상 실업자다. 78년 개혁 개방 이후 중국 경제는 7∼8%의 고도성장을 구가했지만 농업은 연 2.6∼3% 성장에 불과했다.

WTO에 따라 값싼 농산물이 수입되면서 농가가 파산하면 실업인구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고 도시지역으로 농촌 실업인구가 몰려들면서 사회가 급격히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중국 지도부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농업 경쟁력의 기반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가구당 경지면적이 0.4ha로 한국의 30%에도 못미친다. 대개 소농(小農)이어서 대규모 기계화 영농을 할 수가 없다.

중국 정부는 이를 감안해 농촌 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3억명에 이르는 농촌의 잉여노동력을 비농업 분야로 돌리고 전국을 3개 지역으로 나눠 작물을 특화하는 방안 등이 그 것이다. 동부는 채소 등 수출작물을, 서부는 포도와 하미과(哈密菓) 등 과일을, 중부는 곡물을 주로 생산토록 한다는 것. 농민과 농산물 가공업체가 합작해 생산과 유통을 결합하는 ‘농업 산업화 경영’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계획이 거의 실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9차 5개년 계획(95∼2000년)과 10차 5개년 계획(2001∼2005년)의 농업발전 방안은 그 내용에 큰 차이가 없다. 경제개발의 우선 순위가 여전히 농촌보다는 연해 공업지구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공작보고에서도 농촌 문제가 비중있게 거론됐지만 실제 배정된 예산은 1.3%에 불과했다.

홍성재(洪性在) 주중 한국대사관 농무관은 “농업의 전면 개방으로 농촌이 피폐해질 경우 그동안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돼온 농민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 농업이 WTO 체제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중국의 안정적인 경제성장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셔우광 소채단지 쉐옌빈 부사장▼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셔우광(壽光) 소채단지의 야채 수출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쉐옌빈(薛彦斌·45) 셔우광소채산업집단 부사장은 WTO 가입을 적극 환영한다. 수출 확대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기 때문이다.

야채 수출단지로 한국에도 알려진 산둥(山東)성 셔우광시는 ‘중국 소채의 고향’으로 불린다. 청나라 시절 황제가 먹는 야채는 모두 이 곳에서 조달했을 정도로 채소 재배를 위한 자연조건이 뛰어나다.

강수량과 일조량이 적당한데다 특히 토질이 뛰어나 맛있은 채소들이 양산된다. 이 곳에서 재배된 채소가 한국, 일본 등으로 수출되는 것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점도 있지만 채소가 한국인 등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라는 것.

인구 108만명의 농업도시인 셔우광시의 근교는 온통 채소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중 절반은 비닐하우스 등 온실재배 작물이다. 연간 생산량은 한국 채소 소비량의 3분의 1가량인 320만t. 재배작물은 배추, 당근, 오이 등 200여종이다.

쉐 부사장은 “이 곳의 채소는 다른 지역의 야채보다 20% 가량 비싸지만 품질이 우수해 전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또 “일본, 한국, 미국, 러시아 등 10여개 국가에도 채소를 수출하지만 연간 5000t에 불과하다”며 “앞으로는 무공해 채소를 집중 생산해 수출을 늘리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中 첨단농업 실험장 순챠오 개발구▼

소농(小農) 위주의 자급자족 경제가 중국 농업의 특징이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상하이(上海)에서 10여 ㎞ 떨어진 순챠오(孫橋) 현대농업개발구. 농업기술의 발전과 도농(都農) 병진을 위해 94년 9월 설치된 중국 최초의 농업 시범단지다.

현재 이 곳에 입주한 영농회사는 순챠오 농업단지가 직영하는 3개 영농 기업을 포함해 56곳. 대만,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 등 외국 영농회사도 10여개나 들어와 있다.

총 10㎢의 시범단지에는 온도와 습도가 자동 조절되는 유리 온실과 육묘 농장, 식용 균사(菌絲) 농장 등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최첨단 설비들이다. 오이, 토마토, 가지, 피망 등 야채와 선인장 등 화훼 작물을 주로 경작하는 이 곳은 컴퓨터가 전적으로 알아서 재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도와 습도는 물론 영양분의 혼합비율 및 공급량도 컴퓨터가 계산해 공급한다.

농약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해충(害蟲)과 익충(益蟲)을 철저히 이용한다. 완전 무공해인 셈이다.

단위당 생산량도 일반 농업보다 7배 가량 많다. 오이는 한 해에 7번 수확한다. 품질도 뛰어나 일반 농산물보다 3배 가량 비싸다.

그래도 잘 팔린다. 수확량은 대부분 도심의 호텔이나 대형 수퍼마켓, 기내식으로 공급된다. 오이와 피망 등 일부 품목은 일본, 미국 등으로 수출한다. 연구도 활발해 지난 7년여간 200여개의 새 품종을 개발해냈다.

저우원치(周文其) 순챠오농업단지 부사장은 “앞으로 중국 농업은 대규모의 기업농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점에서 순챠오 농업단지의 성패 여부는 중국 농업의 발전 과정에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국제부〓황유성 차장,이종환 베이징특파원,이영이 도쿄특파원,하종대 기자, 경제부〓박래정·구자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