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길을 따라 걸을 때 강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모든 나무와 풀들이 연녹색으로 물 드는 5월 중순과 가을 단풍이 한창인 가을일 것이다. 그러나 약간 황량한 듯한 가운데 봄물이 오르는 3월의 이른 봄 강도 그에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그런 봄 강의 운치가 돋보이는 섬진강 중류가 지금 훼손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전국 12개소에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중 다섯 번째 크기로 건설될 예정인 전북 순창의 적성댐은 섬진강 본류를 가로막는 댐이다.
적성댐은 전북 지역의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와 임실군 강진면 물우리 등 2개 군의 4개면 15개리 8.3㎢(251만평)에 건설될 예정이다.
총 4320억원을 투입해 높이 56m 길이 400m로 건설될 이 댐은 총 저수용량 1억5090만t, 연간용수 공급량 1억3580만t, 홍수조절용량 1000만t 규모다.
건설되면 광주를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에 부족한 물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는 적성댐 예정지 상류 8㎞ 지점에 총 저수용량 4억6600만t 규모의 섬진강댐이 이미 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후 1965년 확장 축조된 이 댐은 본류로는 하루 7만 t의 물을 흘려보내고 하루 300만t의 물은 유역을 변경해 만경강 동진강 유역으로 흘러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활용되고 있다.
이 같은 섬진강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8㎞ 하류에 다시 적성댐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댐이 건설될 예정인 덕치면 물우리에서 평남리에 이르는 구간은 섬진강 530리 물길 중에서도 자연환경이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김용택 시인의 작품 ‘섬진강’의 무대이며, 한국전쟁의 상흔을 그린 소설과 영화 ‘남부군’의 무대이자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마을 전체가 수몰될 동계면 구미리에는 보물 제725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원 양씨 종중 문서와 각종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적성댐이 건설된다면 댐 하류지역 주민들 역시 많은 피해를 볼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유장한 섬진강의 물줄기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댐의 건설로 얻어지는 이익은 물론 많다. 전력과 용수, 식량생산에 기여하고 홍수피해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이점도 많지만 부작용 또한 막대하다. ‘소리 잃은 강’의 저자 패트릭 매컬리는 “대형 댐은 부정부패의 기념탑”이라고 말하며 “댐 건설은 효용보다 대가가 크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지역의 자치단체나 여러 단체들은 적성댐 건설을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시냇물에는 멈춰선 물길이 없다”고 옛날 중국 동진의 시인 곽백이 노래한 것처럼, 남녘의 6대 강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 걸으며 느낀 것은 강물은 고여 있지 않고 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정일 전주 황토현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