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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조작땐 성과급 몰수”…美, 기업경영진 책임 강화

입력 | 2002-03-08 18:09:00


‘엔론사태’에서 드러난 기업의 정보조작과 분식회계를 뿌리뽑기 위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7일 정보 공개의 투명성 강화와 엄격한 회계기준의 적용을 내용으로 한 10개항의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10개항은 폴 오닐 재무장관이 이미 발표한 개선안보다 후퇴한 내용이어서 기업정보 공개 및 회계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책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개선안은 투자자의 기업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하고 회계 및 회계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이지만 무엇보다 경영진의 책임을 어디까지 강화할 것인가가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개선안에 따르면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은 자사 주식을 거래했을 경우 거래가 이뤄진 시점에서 이틀 안에 거래 사실을 공개토록 의무화했다. 지금까지는 최장 1년까지 정보 공개를 미룰 수 있었다.

기업 정보조작이나 분식회계가 밝혀질 경우 경영진은 보너스를 비롯한 성과급 전액을 반납토록 했다. 한번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밝혀진 경영진은 다시는 상장회사의 이사직이나 간부직에 임명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는 얼른 보면 획기적 제안 같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주 오닐 재무장관은 기업이 불충분한 정보를 공개해 소송을 당했을 경우 기업 경영진의 소송비용을 보험에서 제외한다는 안을 발표했다. 그렇게 될 경우 경영자 개개인이 천문학적인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진은 더욱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닐 장관은 또 ‘무모한 결정(recklessness)’ 뿐만 아니라 ‘경영 소홀(negligence)’의 경우에도 경영진에 법적 책임을 묻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부시 대통령의 10개항에서는 제외됐다.

민주당의 토머스 대슐리 상원 원내총무는 부시 대통령의 안이 “내가 생각하는 최저 기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라면서 의회에서 보다 엄격한 법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미 의회에는 관련 법안이 무려 32개나 제출돼 있다.

그러나 미 기업들 중 일부는 ‘엔론사태’ 이후 “기업 경영진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마치 ‘집단 린치’를 연상케 한다”(선 마이크로시스템스 스콧 맥닐리 회장)며 규제 강화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제록스사의 앤 멀캐히 사장은 “엔론사태 이후 회사의 재무최고책임자(CFO)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고 CEO 알선업체 사장인 존 챌린저는 “무거운 경영 책임을 벗기 위해 그만두는 CEO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8일 전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美 회계감시 강화 국내에도 파장 클 것”▼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기업회계 개선안은 투자자 보호와 재무 정보에 대한 경영자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엔론 사태 이후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왔다. 기존 원칙들을 단순히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엔론과 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기업의 회계관행에 대해 구체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은 회계 정보의 생산에서부터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회계정보 생산과정에서의 불투명성을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투명 회계의 핵심 요소이다.

개선안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경영자의 책임에 관한 것이다. 재무정보 작성의 기본적 책임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있다는 인식 하에 CEO 개인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개인적 재산상태 등의 공시를 강조하고 있다. 왜곡정보가 생산될 수 있는 근본에서부터 부당한 회계관행을 뿌리뽑으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는 문제의 핵심을 매우 잘 파악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토론되고 있는 경영자의 재무정보 작성에 관한 책임을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과 일치한다.

미국의 제도개혁은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이러한 부시 대통령의 기본원칙을 구체화할 제도개혁이 주목된다.

송문호 안진회계법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