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시가 작년 ‘한 권의 책, 하나의 시카고’라는 구호를 내걸고 온 시민이 함께 읽을 책 한 권을 선정해서 ‘책 읽는 시카고’를 연출했던 일을 우리는 들어서 알고 있다. 최근 국내 신문에 더러 보도되었듯이, 시카고에 이어 이번에는 뉴욕시가 올 여름께 같은 행사를 벌이기로 하고 8백만 뉴욕 시민이 함께 읽을 한 권의 책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뉴욕은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출판의 중심부다. 뉴욕 소재의 출판사에서 책을 내지 않으면 책을 낸 것이 아니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뉴욕은 ‘책 동네’이고 위세 당당한 ‘책의 제국’이다. 뉴욕은 세계 모든 인종이 모여 있는 다문화(多文化) 다언어(多言語)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 뉴욕에서 어떤 책이 ‘이 한 권의 책’으로 선정될까? 8백만 시민의 취향과 요구에 고루 응답한다는 것은 사실 어떤 책도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부담이다. 그런 부담을 질만한 한 권의 책을 뽑을 수 있기나 할까?
지금 그 한 권의 책 후보에 올라 있는 가장 유력한 작품은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소설 ‘물의 색깔’과 한국계 작가 이창래의 ‘네이티브 스피커’라 한다.
맥브라이드의 소설은 뉴욕 유태인의 세계를, 이창래의 소설은 ‘헨리 박’이라는 한국계 이민 남자의 뉴욕살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뉴욕인은, 아니 ‘미국인’ 전부는, 구약의 유태족장 아브라함처럼 딴 데서 흘러들고 ‘건너온 자’들(아브라함의 원래 이름 ‘아브람’은 ‘건너온 자’라는 의미이다)이며 그 후손들이다. 이 건너온 자들의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배경은 달라도 그들이 ‘아메리칸’이 되고 ’뉴요커’가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동화(同化)와 정체성과 자기 발명(發明)의 문제는 미국적 경험의 핵심부에 놓인 공통 주제다.
특수한 시간과 장소의 경험을 ‘인간’의 경험으로 들어올리고 심화시키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 이창래의 첫 소설 ‘원어민’은 뛰어난 작품이다. 그것은 단순한 이민자의 경험담이 아니라 ‘인간의 서사’이다. 이야기의 조직기술도 탁월하고 언어적 제시의 능력도 눈부시다. “고대 로마가 최초의 진정한 바벨이었다면 뉴욕은 두 번째 바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찬란한 도시로 들어오는 자는 이곳의 원어, 이곳의 라틴어를 배워야 한다. 너의 옛 언어를 죽이고 입술을 풀라. 미국 도시의 매와 그 울음소리를 들어라.” ‘네이티브 스피커’(미래사)의 한 구절이다.
인생학점 B+, 불법체류자, 황화(黃禍), 이방인, 센티멘탈리스트, 추종자, 반역자, 스파이-이 말들은 소설 속의 미국인 아내가 남편 헨리 박을 규정한 언어의 일부이다. 인간치고 누가 이 묘사를 벗어날 수 있는가? 이창래 소설이 뉴욕의 책 후보에 올랐다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젊은 작가의 소설들은 우리 문학을 위해서도 보통 귀한 자원이 아니다. 그의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와 ‘제스쳐 라이프’(중앙M&B)가 번역돼 있지만 우리 독서계는 아직 이창래의 문학을 잘 모르고 있다.
도정일(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