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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이윤배/대학가 술문화 이대론 안된다

입력 | 2002-03-11 18:35:00


신학기 개강과 더불어 대학 캠퍼스가 학생들의 잘못된 음주문화로 인해 비틀거리고 있다.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가에서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역시 대학가의 잘못된 음주문화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사고들이라는 점에서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아닌가 싶다.

5일에도 충북 보은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대학생이 전날 과음한 뒤 다른 학생들과 구보를 하다 숨지는 사고가 났다. 신입생 환영회, MT, 동아리 모임 등에서 술을 못 마시는 학생들에게 신고식이라는 그릇된 통과 의례를 앞세워 ‘사발주’는 물론 ‘폭탄주’를 마시게 해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하는 일들이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유행병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대낮에 캠퍼스의 여기 저기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광경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한국의 바카스(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의 조사 통계에 따르면 남학생의 94.3%, 여학생의 91.4%가 술을 마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한국 성인의 음주 비율(63.3%)을 훨씬 능가하는 수치다.

어쩌다 오늘날 우리 대학생들의 음주 문화가 이처럼 비이성적이고 비생산적으로 왜곡되고 굴절되고 말았을까. 물론 백 보, 천 보 양보해서 입시 지옥으로부터의 해방감과 대학생으로서의 자유와 낭만을 만끽하고픈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대학은 술을 마시고 노는 곳이 아니라 지성인으로서 인격을 도야하고 학문을 연마하여 미래의 자신을 준비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대학생들의 잘못된 음주문화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술로 인해 각종 사고와 추태가 연출되고 있고 술을 못 마시는 학생들은 학업에 지장을 받을 만큼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삼육대 천성수 교수가 대학생 1084명을 대상으로 한 음주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46.0%는 음주 후 기억이 끊기는 ‘블랙 아웃’ 현상을 경험했고 남학생의 48.4%와 여학생의 19.1%는 ‘주 1회 이상 폭음한다’고 답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학생들의 왜곡된 음주문화는 근본적으로 기생 세대들의 폭탄주와 같은 잘못된 음주 풍토와 퇴폐 향락 문화의 영향 탓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와 장기간의 군부 독재 그리고 스승으로서의 제 역할을 포기한 교수와 대학 당국에도 책임이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대학의 문화가 건전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가정, 사회 단체, 대학, 그리고 정부 당국이 모두 나서서 지혜와 중지를 모아야 한다. 지금처럼 대학생들의 왜곡되고 잘못된 문화 관행을 바로잡아 주지 않은 채 수수방관한다면 결국 한국 대학의 21세기는 발전보다는 퇴보가, 희망보다는 절망이 있을 뿐이다.

이윤배 조선대 교수·컴퓨터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