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다니엘 위스키 등의 주류 수입업체인 한국 브라운 포맨 김용식 사장(38)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베네수엘라, 독일 등에서 10여년 간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덕에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간 딸 현경이와 두 돌 된 아들 윤중이의 외국어 교육에 대해서는 “반드시 하되 서두르지 않는다”며 느긋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이들을 어느 사회에서든 가슴 펴고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국제인으로 키우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하는 김 사장.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지덕체(智德體) 가운데 인성과 체력을 쌓아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뚜렷한 교육방침을 갖고 있다.
“구미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외국어나 지식으로만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맺기 힘들다는 점을 깨닫게 되죠. 서양인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열세라는 위축감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어릴 때 주특기 운동 한 두 가지를 가르치는 것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매너를 익히게 하는 것이 세련된 세계인으로 키우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이같은 생각은 김 사장 자신이 중 고교 시절 가족과 떨어져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기숙 사립학교 ‘윌 브라햄 & 몬순 아카데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체득한 것이다.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 학교에 동양인이 거의 없었던 터라 ‘칭크(chink·중국인 등 동양인을 경멸해 부르는 속어)’라는 놀림을 받았지요. 아이들과 자주 싸웠고 그때부터 ‘운동을 잘 해야 얕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김 사장이 다녔던 기숙학교는 운동을 공부와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일반적인 우리나라 학교와 달리 매일 오후 3∼5시에 의무적으로 운동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운동에 열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중에는 매사추세츠주 고교생 축구 대표선수단에 뽑히기도 했다.
“특히 서양인들은 운동 하나 잘 하는 데 큰 가치를 부여해요. 한가지만 특출하게 잘 해도 일단 ‘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기본을 갖추는 셈이죠.”
김 사장은 현경이가 아주 어려서부터 쉬는 날이면 아이 손을 잡고 집에서 가까운 한강둔치나 도산공원을 찾았다.
현경이는 아빠와 함께 공차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운동을 좋아하게 됐다. 수영강습은 만 6세 무렵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스키장에 데려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뒤 이번 겨울부터는 스키학교에도 등록시켰다.
조금 더 크면 골프나 테니스 등 사교에 도움이 되는 운동도 적극적으로 가르칠 생각이다. 아들 윤중이에게는 축구같은 단체 스포츠도 가르치고 싶다. 남과 부딪치며 협동심과 승부근성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매너는 외국 비디오나 그림책 등 교육 매체를 통해 가르친다.
학습용으로 제작된 영어 비디오에는 상황별로 외국 문화를 익히게 하는 장치들이 많다는 것이 김 사장의 조언. 예를 들어 아이들과 함께 비디오를 보며 “Would you like to have a cup of tea?”라는 문장이 나오는 장면에서 여성이 먼저 테이블에 앉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가리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예절을 가르친다.
함께 동화책을 읽을 때나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 때도 “시장에서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면 ‘실례합니다’라고 말해야 돼”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지나가는 차가 멈춰 서 주었다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고마워해야 돼”라고 일러준다.
“미국은 예절교육에 약하다는 편견이 팽배하지만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May I go out ∼?’이라고 공손히 물어 ‘Yes, you may’라는 어른의 허락을 받아야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예절을 강조했어요. 취침 시간에 세탁기를 돌리는 등의 행동을 아주 무례한 일로 가르칠 정도로 엄격했고요.”
아이들에게 마냥 좋기만 한 아빠지만 함께 외출했을 때 식당에서 떼를 쓰거나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는 일은 절대 금한다.
부인 임미경씨(36)도 “학교에서 시험을 잘 봤을 때보다 친구들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일 때 더 크게 칭찬해 준다”면서 “남편의 교육관을 100% 신뢰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