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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주파수를 잡아라”…9㎑∼3㎓대 여분 바닥

입력 | 2002-03-12 17:33:00


벤처기업인 C사장은 최근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신규 사업을 없던 일로 접었다.

인터넷 전용선을 무선으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사용할 주파수가 부족한 것이 문제가 됐다. 서비스에 써야 할 주파수가 KT와 하나로통신이 이미 상용화한 초고속 무선랜과 겹쳐 전파 간섭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무선케이블 인터넷업체인 한국멀티넷은 주파수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1999년부터 무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에 써온 주파수를 조만간 국가에 반납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 이 회사가 쓰고 있는 주파수는 2.5㎓대의 폭 60㎒ 분량. 하지만 이 주파수는 위성라디오(DAB) 사업자에게 우선권이 있다. 임자가 나타나면 당장 내줄 수밖에 없어 시설 투자를 완전히 새로 해야 할 형편이다.

휴대전화, 무선인터넷, 방송, 초고속무선랜, 위성통신 등 주파수를 쓰는 무선통신 서비스가 봇물을 이루면서 주파수 부족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치솟는 무선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무형의 국가자원인 주파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 당연히 효율 좋고 쓸모 있는 주파수 공간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주파수 여분이 없다〓한국은 현재 9㎑부터 3㎓ 대역 내의 주파수 자원을 모두 사용 중이어서 당장 쓸 수 있는 주파수 여분이 거의 없다.

주파수 이용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정보통신부의 주파수 분배표 상에는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특히 통신 효율이 좋아 ‘로열 대역’으로 불리는 30㎒∼2㎓ 구간에는 TV방송 휴대전화 주파수공용통신(TRS) 등 대중적인 무선서비스들이 빽빽이 자리잡고 있다. 새로운 주파수 자원을 찾아 6㎓이상의 높은 대역 주파수 개발이 활기를 띠면서 정통부는 270㎓ 주파수 대역까지 용도를 확정한 상태다.

최근 확산 중인 무선랜 초고속인터넷에 쓰이는 2.4㎓ 대역은 누구나 면허 없이 쓸 수 있는 개방대역이라서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폭 100㎒의 이 주파수는 무선랜, 블루투스, 위성휴대전화, 아마추어무선 등 수요가 겹쳐 주파수 간섭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다.

정보통신대학 이혁재 교수(전자공학)는 “주파수는 필요에 따라 용량을 늘릴 수 있는 유선망과 달리 쓸 수 있는 자원이 한정돼 있다”며 “무선데이터 활용이 늘수록 부족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치열한 주파수 확보 경쟁〓주파수 확보를 위한 각 기업들의 노력은 처절한 수준. 특히 휴대전화용 주파수는 수익전망이 좋아 통신업체들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 합병과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권 획득으로 42.5㎒의 휴대전화용 주파수를 확보했다. KTF와 LG텔레콤은 개인휴대통신(PCS)과 IMT-2000용으로 각각 40㎒와 30㎒를 보유하고 있다. KT는 무궁화위성(1324㎒)용과 TRS(10㎒)용 등을 합쳐 통신업체 중 가장 많은 1384㎒ 폭의 주파수를 사용 중이다. SK텔레콤은 최근 DAB용 2.5㎓ 대역 주파수(25㎒)를 추가로 달라고 정부에 신청해 경쟁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기업들의 주파수 확보전쟁으로 주파수 가격은 치솟고 있다. 2㎓ 대역 IMT-2000 업체들이 주파수 이용대가로 정부에 내는 출연금은 업체당 1조3000억원 규모. 96년 PCS사업자들의 출연금 1100억원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유럽에서는 IMT-2000 주파수 경매가 과열돼 업체당 낙찰가가 우리 돈으로 7조원대에 이르기도 했다.

▽주파수 갈증을 풀 묘안은〓전문가들은 현재의 휴대전화용 주파수로는 늘어나는 무선데이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음성통화보다 주파수 사용량이 10배 이상 많은 데이터통신을 본격적으로 이용하려면 2㎓ 대역 IMT-2000 주파수를 모두 써도 부족하다는 설명. 휴대전화 업체들이 최고 2Mbps속도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내놓고도 선뜻 가격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통부는 이에 따라 새로운 주파수 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60㎓ 대역에 이르는 미개발 주파수 대역을 적극 활용해 2005년까지 누구나 2Mbps급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쓰도록 한다는 것. TV방송이 디지털로 전환되면 기존 아날로그용 주파수를 회수해 첨단 서비스에 재활용할 방침이다.

업계는 또 소프트웨어무선기술(SDR)과 주파수분할전송기술(OFDM) 등 주파수 활용효율을 높이는 신기술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전자통신연구원(ETRI) 김재명 무선방송기술연구소장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백㎓대 주파수 상용화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라며 “적극적인 기술개발은 주파수 부족사태를 막고 무선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