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흔다섯인 김정남 할머니와 일흔넷인 이해순 할머니가 시집 ‘시들지 않는 민들레’와 일기모음집 ‘황혼’을 얼과알출판사에서 나란히 펴냈다.
김 할머니는 최근 출판기념회를 협의하기 위해 출판사 관계자와 함께 이 할머니가 묵고 있는 경기 안성시 미리내성지 실버타운을 찾았다. 두 사람은 초면인데도 금세 형님 아우가 됐다. 두 할머니 모두 남편이 먼저 돌아가셨고 각각 3남1녀와 2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킨 김 할머니는 막내딸 집에서 손녀를 키우며 살고 있고 이 할머니는 실버타운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하루 일상 중에 삶보다는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는 두 사람은 늦은 나이에 글을 쓰게 된 이유를 ‘화풀이’라고 말했다.
“묻어놓고 산 세월이 너무 길어 그런지 혼자 앉아 있으면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 남들이 그것을 시라 부르든 말든 한번 끼적대고 싶더라고.”(김 할머니)
“16년 전 남편 보내고 울화 때문에 못 살겠더라고. 애들한테도 가까운 친인척한테도 이야기 못하는 것들을 나한테라도 풀어놓아야지 하는 생각에 일기를 쓰게 됐지.” (이 할머니)
두 사람 모두 명문여고를 졸업했을 정도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 할머니는 교사 생활을 하다 도쿄 유학생 인텔리 남편과 결혼했으나 남편이 히로시마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서른둘 나이에 청상과부가 됐다. 해방과 전쟁, 근대화를 겪으면서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보따리장사, 삯바느질, 기름장사 안 해본 것이 없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미국 가서 성공한 동생들하고 살기 위해 65세에 홀연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갔던 김 할머니는 2년 만에 귀국했다. 궁전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외로움 때문에 우울증까지 걸렸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육사와 경희대 등에서 중국어를 가르친 남편을 환갑에 먼저 보낸 데 이어 사업을 하던 맏아들까지 병으로 잃는 참척(慘慽)을 당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하루도 빠짐없이 적은 일기가 두꺼운 대학노트로 10여권에 달한다. 그는 “인생에서 기쁜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때그때 고비를 넘기며 사는 것이다. 요즘은 혼자 지내면서 글 쓰고 그림 배우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 하며 산다”고 말했다.
안성〓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