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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오관영/납세자 소송법 조속히 제정을

입력 | 2002-03-12 18:17:00


공개 입찰도 없이 사업능력이 없는 업체와 민자유치 사업을 벌여 수백억원을 낭비한 충북 청원군의 ‘초정약수 스퍼텔’ 사업, 40여억원에 유람선 ‘테즈락호’를 구입·보수해 24억원의 적자를 낸 후 14억원에 매각해 50억원의 혈세를 낭비한 부산관광개발㈜, 쌀의 소비를 촉진한다고 난리를 치면서 한편에서는 경제성 없는 농지와 수자원 확보를 위해 6조원을 쏟아 붓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 등….

이 사업들은 지난해 ‘함께 하는 시민행동’이 선심성 예산집행과 어처구니없는 예산낭비 사례에 대해 매달 주는 ‘밑 빠진 독 상’의 영예(?)의 수상 사업들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관련자는 처벌받아야 하고, 낭비된 돈은 환수되어야 한다.

납세자는 납세의 의무만큼이나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납세자의 권리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납세자가 처한 조건은 어떠한가. 혹 의로운 마음으로 보도블록 교체와 같은 예산 낭비의 현장을 제보했다고 하자. 이 납세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사업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통지서뿐이다. 그리고 공사는 계속된다.

그래도 보도블록 교체와 같이 눈에 보이는 사업은 관공서에 전화를 해서 악이라도 써보지만 대부분의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납세자는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납세자의 혈세를 집행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누구를 위해 어디에 얼마만큼의 돈을 쓰는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의 납세자들은 자신이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도 없고, 낭비된 예산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감사원과 각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의 감사관 등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통제·감시장치가 제 기능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각 행정기관 내에 존재하는 감사기구는 공무원들이 인사에 따라 맡는 보직 중의 하나이므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기구여서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납세자인 시민에 의한 외부로부터의 감시장치가 갖는 의미와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국 67개 시민단체들이 납세자들에게 위법한 예산집행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원고자격을 부여하는 ‘납세자 소송법’ 제정을 입법 청원했고, 2001년 3월 3일 의원발의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심의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납세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재정정보에 대한 공개를 통한 투명 예산, 예산편성의 시민참여를 보장하는 참여 예산, 잘못 쓰인 예산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책임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정보 공개에 대한 법(조례)은 청구가 있을 때 공개하는 ‘소극적 공개’에서 적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적극적 공개’로 바꿔야 한다.

또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위법하게 사용된 경우 이를 환수하기 위한 소송 제기권을 납세자에게 부여하는 ‘납세자 소송법’이 하루 속히 제정되어야 한다.

오관영 ´함께 하는 시민행동´예산감시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