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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영언/´오래된 친구´

입력 | 2002-03-12 18:17:00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얼마 전 히트했던 영화 ‘친구’의 포스터에 나오는 문구다. 폭력을 긍정적으로 미화했다해서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한 사람의 삶에서 친구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영화였다. 실제로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그 사람의 인생과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좋은 친구를 만나 성공한 사람, 또 나쁜 친구를 만나 망가진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진정한 친구란 서로 믿음이 두터운 사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깨지 않고 서로를 도와주고 이해하고 감싸준다. 이는 바로 상대의 진실됨에서 나온다. 이런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중국 노(魯)나라 증자(曾子)는 인간사에서 무엇보다 친구와의 우정을 중시하는 사상가다. 그는 ‘벗과 사귀는 데 믿음이 있었는가’ 날마다 묻고 반성했다고 한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친구간에는 이 같은 진실한 믿음이 생겨날 수 없다. 자신의 이익과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 돌아서고 마는 것이다.

▷대통령 아들 김홍업(金弘業)씨와 친구인 김성환(金盛煥)씨의 관계가 요즘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그들간의 돈거래와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돌고 있다. 고등학교 및 ROTC동기인 그들은 40년간 우정을 나눠온 ‘오래된 친구’라고 한다. 성환씨는 어제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려울 때 빌려주고 받는 사이”라며 “빌려주고 안 받기도 하고, 나도 빌리고 안 돌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지만 그처럼 셈이 약해도 되는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친구간에는 금전거래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뜻의 ‘친구 잃고 돈 잃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이 같은 수상한 돈거래가 홍업씨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성환씨가 대통령 아들을 등에 업고 이권에 개입했다거나, 이 과정에서 홍업씨도 알게 모르게 빠져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찾아든 돈과 권력이 두 사람의 우정을 황폐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들이 진정한 친구라면 욕망의 절제를 위해 서로간에 돈 대신 채찍을 주고받아야 했다. ‘친구와 술은 묵을수록 좋다’는 속담이 두 사람에겐 어쩐지 안 맞는 것 같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