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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수진/수권정당은 없다?

입력 | 2002-03-12 18:17:00


양대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한국의 정당정치는 현재 중대한 전환의 고비에 처해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를 지배했던 ‘3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 3김 식 정당정치의 종식을 위한 중요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 실험의 성패가 낙후된 한국 정당정치의 민주적 도약 여부, 그리고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는 민주정치의 완성 여부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DJ)의 족쇄로부터 형식상 자유로워진 민주당이 현재 이 실험을 선도하고 있다. 민주당이 도입한 당권과 대권의 분리, 그리고 대통령 후보 국민참여 경선제는 3김 정치의 핵심적 적폐였던 제왕적 대통령제와 사당정치를 해소하고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대폭 국민에게 위임하려는 진일보한 정치실험이다. 이 시도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정치적 국면에 있는 한나라당을 압박해서 제한적 국민참여 경선제와 대선 후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전제로 한 집단지도체제의 도입을 일단 성사시켰다.

▼구태경선…내분…짜증만▼

그런데 한국의 양대 정당이 추진 중인 이 실험의 성공을 가로막는 조짐들이 속출함으로써 민주화의 진전을 열망하는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우선 민주당에서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 후보 경선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우려케 하는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민주적 선택에 의한 축제의 경연이어야 할 경선이 금권을 등에 업은 조직적 동원력의 경연장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동원과 매표의 증거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고, 또 지역주의적 표 쏠림 현상마저 나타남으로써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초반부터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경선 결과에 대한 흔쾌한 승복이 과연 보장될 수 있겠는가. 민주적 정당정치의 확립을 위한 첫 시도가 무참한 실패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비단 민주당에 심대한 정치적 타격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전도에 심각한 암운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

이회창 총재의 당 운영방식을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한나라당의 내분은 더욱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현재 한나라당과 이 총재가 누리고 있는 상대적 우위가 집권세력의 실정에 힘입은 반사적 이익일 뿐, 이들의 정책적 대안에 대한 지지와 신뢰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나라당과 이 총재는 상대의 잘못을 들추고 비판하기에 앞서 만약 집권할 경우 이와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안을 과연 마련하고 있는가. DJ 정부 말기에 터져 나오는 온갖 부패와 비리, 추문들의 근본 원인이 3김 식 사당정치에 있을진대 한나라당과 이 총재는 3김 식 정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3김 식 지역주의를 과감히 청산하려는 의지와 실천계획을 확립했는가, 아니면 특정 지역의 표심에 여전히 연연해하고 있는가. 3김 식 정당정치를 넘어서는 민주적 정당개혁을 단행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3김 식 측근정치와 붕당정치를 3김 시대 이후에도 재연해 보겠다는 것인가. DJ 정부의 참담한 실패로 상대적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현 시점에 한나라당과 이 총재로부터 터져 나오는 작금의 사태들은 이회창 정치가 3김 이후의 건설적 대안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정치개혁 실험 실패한다면▼

정당정치 개혁을 위한 양대 정당의 실험이 이처럼 좌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 우리 정치권은 국민에게 어떤 희망적인 대안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해지는 것은 바로 양당 개혁의 이와 같은 한계에 크게 연유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계개편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면면을 볼 때 이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민주적 수권정당을 결성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 대부분이 3김 식 사당정치의 동조자나 수혜자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주창하는 개혁의 목소리를 신뢰하는 국민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의 정치실험과 한나라당의 내분이 정당정치의 성공적 민주화를 향한 진통과정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3김 정치의 과감한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한국정치의 미래에 관해 분명한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조직화를 국민은 요구하게 될 것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정치학·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