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게임을 보는 듯한 연극?’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암흑전설 영웅전’은 컴퓨터 게임을 소재로 악의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빛의 제국이 대항하는 내용의 판타지물.
이 작품의 홍일점 배우 이혜원(28)은 최근 머리를 노랗게 탈색한 뒤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소재로 한 연극이어서 사이버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
그가 맡은 무희 역은 게임 세계로 들어온 주인공에게 현실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사이버상의 인물. 게임의 ‘ㄱ’자도 모르는 그가 게임 캐릭터를 연기한 소감은 어떨까?
“다양한 사람이 등장해 전쟁을 벌이는 게임은 보기만 해도 복잡하더군요. 연극에 출연하면서 처음에는 생소했는데 무희의 인간적인 면에 몰입하면서 자연스러워졌어요.”
1997년 ‘작은 신화’ 단원으로 연극계에 입문한 이혜원은 ‘G코드의 탈출’에서 떠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지고지순한 아내로, ‘미친 키스’에서는 쇼핑 중독증에 걸려 매춘에 빠져드는 여인으로 출연한 바 있다. ‘암흑…’은 광기와 순수 사이를 오가던 그에게 감정을 절제하고 비주얼한 매력을 끌어내는 기회를 제공했다.
“중학교 때부터 제가 유일하게 소질이 있다고 느낀 게 연극이었어요. 내 속에 카리스마 섹시 순수 푼수 등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최고의 배우가 되기 위해 ‘끝까지 한번 가보자’고 생각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됐네요.”
송강호 유오성 등 연극계 출신 배우들이 영화계에 진출하는 요즘, 그 역시 몇 번인가 영화 오디션에 응시했지만 노출이 심한 개성파 배역이 많아 사절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잔뜩 긴장이 되지만 막상 극이 시작되면 어느 순간부터 내 자신이 극중 인물과 하나가 돼요.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연극만의 짜릿한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락히맨쇼’ 고선웅 작가의 아내이자 14개월된 딸 다현이 엄마이기도 하다. 남편과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참깨 부부’라고 자랑하면서도 “연극을 핑계로 딸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뉘우침’도 잊지 않았다. 31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반 7시반, 일 오후 3시 6시(월 공연없음). 1만∼1만5000원. 02-764-3380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