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의 ‘핵 태세 검토(NPR)’ 보고서는 9·11테러 이후 국제정세를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속셈을 드러낸 것이어서 심히 우려된다. 미국이 핵을 실전무기로 활용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으며 북한 등 7개국이 잠재적 핵공격 대상국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미국이 상호확증파괴(MAD)라는 개념을 통해 핵무기를 전쟁 억지력으로 활용하던 전략을 파기하고 전쟁수단으로 활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핵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게 됐다.
당장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내세워 핵확산을 방지하려던 미국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됐다. 스스로는 대량살상무기의 파괴를 목표로 한 신형 핵무기 개발까지 추진하면서 남에게는 핵확산금지를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논리로는 다른 핵 보유국이나 개발 가능국을 설득하기 어렵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명분도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공격과 방어를 포함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완벽한 대비능력을 갖춘 미국이 적대국에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군비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도 우려되지만 특히 한반도에 미칠 악영향이 걱정이다. ‘악의 축’ 발언 등 부시 대통령의 강경한 언사로 인해 격앙된 북한이 핵공격 대상국으로 지목된 것을 심각한 도전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네바 합의, 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 등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겨온 한반도에 미국의 정책 변경으로 인해 다시 긴장이 고조돼서는 안 된다. 미국은 핵무기로 남북한의 분쟁을 해결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미국은 남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해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정부도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는 불행한 사태는 결단코 막아야 한다는 각오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