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창업/마이 비즈니스]놀부 부대찌개 한운영사장 창업기

입력 | 2002-03-13 17:28:00

이제는 어엿한 식당 경영인이 된 한운영씨가 자신의 점포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꿈의 160만원.

작년 10월 29일. 놀부 부대찌개 부평 동아점의 한운영 사장(34)은 하루 매출액 160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150만원어치가 넘는 부대찌개가 팔려나갔다.

한 사장은 몇 개월 전까지 ‘백수’, 그 몇 개월 전에는 하루벌이 막일꾼이었다. 또 그 전에는 크레인 기사, 학습지 배송, 운동화 업체의 영업담당 등을 전전했다. 비웃음인지 동정인지, 누군가가 말했다. 이렇게 하는 일마다 꼬이기도 쉽지 않겠다고.

놀부 부대찌개 사장이 된 지 5개월째. 5000만원 넘는 빚이 아직 있지만 그는 2년 안에 다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일, 저런 일〓1994년, 제대를 했다. 자격증을 하나 따서 건설회사에 타워크레인 기사로 취직을 했다. 높은 곳에 혼자 앉아 사람이 아닌 기계를 상대하는 기술직이 끔찍하리만큼 적성에 안 맞았다.

운동화를 만드는 회사의 영업 직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이 재미있었다. 천직이라고까지 생각했다. 96년 회사가 부도났다. 3개월치 월급은 못 받았다. 결혼 날짜를 잡아놓았지만 무작정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학습지 업체에 교육 교재 배송직원으로 입사하고 결혼도 했다. 얼마후 외환위기로 회사가 문을 닫았다.

아내도 딸도 있는데 마냥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인력알선소 등을 통해 하루벌이 일을 찾아다녔다. 운이 좋아 4만원짜리 일이 걸리면 소개비 4000원을 떼고 그날 저녁 3만6000원을 집에 가지고 갈 수 있었다.

▽식당과의 인연〓동네에 알고 지내는 사람이 부평에서 꽤 유명한 메밀국수와 만두 전문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부탁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내들끼리도 알고 지내는 사이에 자존심이 상했다. 말을 꺼내기까지 한달이 걸렸다.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다행히 흔쾌히 승낙했다. 매장의 비품을 관리하고 서빙도 하는 일이었다. 월급은 120만원이었다.

라면 외에는 음식을 직접 해본 적이 없었지만 노트에 조리법을 적어가며 만두 만드는 법도 배웠다. 식당 영업하는 것, 주방 관리하는 법도 어깨너머로 배웠다. 1년여를 일해보니 ‘나도 식당을 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떨어진 지역에 식당 점포 하나를 눈여겨봤다. 1주일쯤 근처를 서성이며 오가는 사람을 관찰했다. 사람이 저 정도만 들면 하루 매출 60만원은 되겠다 싶었다.

가진 돈 탈탈 털고, 집을 담보로 3500만원을 대출받아 6500만원으로 그 가게를 임대했다. 99년 말, 분식집을 열었다. 마케팅 비용을 줄이려고 오픈식도 안 했다. 첫날 매출은 달랑 13만원. 6개월만에 두 손을 들었다. 그 자리에는 우동 체인점이 들어왔다. 같은 자리에 업종도 비슷한데 우동집은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이해가 안됐다.

‘다시는 식당을 하나 봐라.’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여기저기 손을 벌려 다른 가게를 임대했다. 메이커 구두 수입업자에게 물건을 받아 구두 매장을 열려는 것이었다. 오픈도 하기 전에 수입 업자가 부도나 물거품이 됐다.

▽놀부 부대찌개를 열기까지〓부대찌개를 원체 좋아하는 아내가 어느 날인가 부대찌개집을 해보자고 했다. 자신이 없었다. 식당이라면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예전의 식당 자리에 들어온 우동체인점은 장사가 잘 됐던 것이 생각났다. 한씨가 분식집을 할 때는 조리법이 계량화되지 않아 어느 날은 맛있다가 어느 날은 맛없다가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단골손님이 생기지 않았다. 식(食)재료를 일괄적으로 공급해주는 프랜차이즈 점포를 열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부평 근처의 놀부 부대찌개집 두 군데를 가봤다. 처음 가본 곳은 ‘썰렁’했다. 그냥 손님이 빈자리에 알아서 앉으면, 직원이 아무 말없이 찌개 냄비를 덜렁 올려놓고 가는 식이었다. 두 번째 가본 곳은 180도 달랐다. 주인이 직접 나와 인사하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주인이 “놀부 체인점을 운영하는 것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한씨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5000만원을 빚내고 있는 돈도 합해 1억원을 만들었다. 놀부 본사에서는 3차례나 직접 나와 상권을 둘러봤다. 근처에 다른 놀부 부대찌개집이 있어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지만 큰 도로가 실제로는 상권을 분리하는 것을 확인하고 매장을 열 수 있게 해줬다.

본사 설계팀이 나와서 인테리어를 했다. 1개월의 교육과 컨설팅도 받았다. 첫해에만 1400만원을 내면 다음해부터는 교육비 110만원과 식재료비만 내면 된다고 했다.

이번에는 230만원을 들여 3일간 개점 이벤트를 했다. 아르바이트생 7명이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깃발을 들고 주택가를 누볐다.

▽어엿한 놀부 부대찌개 사장〓월매출은 평균 3000만원 가량. 식재료비 인건비 등을 빼면 900만원 정도가 남는다. 두 딸을 포함한 4식구의 생활비를 하고 차곡차곡 빚을 갚는다.

단골도 제법 생겼다. 다른 식자재는 본사에서 공급하지만 밑반찬 3가지는 점포별로 알아서 한다. 처음에는 무채 겉절이 김치로 했더니 전부 빨간 계열의 반찬만 있어 식탁이 근사해 보이지 않았다. 시금치 감자 등을 적절히 섞어 ‘보기에도 좋은 식탁’을 만드는 노하우도 생겼다. 한 사장은 휴일이 하루도 없다. 설에만 이틀을 쉬었다. 그는 그러나 “내가 차린 식탁에서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게 고마울 뿐”이라고 말한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