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金弘業) 아태평화재단 부이사장이 자신의 고교 및 ROTC 동기인 김성환(金盛煥·전 서울음악방송 사장)씨와 차명계좌를 통해 7억∼8억원의 자금 거래를 해온 단서가 포착됨에 따라 자금의 출처와 사용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정일(車正一) 특별검사팀은 김성환씨가 김홍업씨에게 빌려줬다고 주장한 1억원이 들어 있던 환경미화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확인하고 이 계좌에서 빠져나온 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좌를 발견했다.
이 계좌는 여러 단계의 자금 세탁을 거친 뭉칫돈이 입금되는 ‘저수지 계좌’였다. 특검팀은 이 계좌에 모인 돈의 규모가 7억∼8억원대에 이르고 출처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계좌 명의자인 40대 여성을 불러 추궁한 끝에 계좌의 주인이 김성환씨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의 일부가 김홍업씨 측에 수시로 전달된 정황도 포착됐다.
이 계좌가 김홍업씨나 아태재단의 비자금 계좌일 가능성에 대해 특검팀이 수사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특검팀은 문제의 계좌에 입금된 돈 가운데 지앤지그룹 회장 이용호(李容湖)씨의 돈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곧바로 김홍업씨를 소환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특검팀은 △자금의 출처 △자금 세탁 경위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김홍업씨 측과 거래한 배경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김성환씨가 잠적한 상태이고 거액의 자금이 복잡한 경로를 거쳐 세탁됐기 때문에 특검팀의 수사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검팀 관계자는 “입금된 돈의 대부분이 출처를 도저히 추적할 수 없을 정도로 세탁됐기 때문에 김성환씨를 추궁해야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며 “하지만 김성환씨를 검거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남은 수사 기간에 자금의 출처를 확인하지 못하면 수사 과정에서 적발된 김홍업 김성환씨의 비리 혐의에 관한 수사 자료를 검찰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태재단 관계자는 14일 “김 부이사장은 이용호씨를 알지 못하고 김성환씨의 차명계좌는 김 부이사장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