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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스님 다비식 추모의 정도 파격

입력 | 2002-03-13 18:03:00


승속(僧俗)을 넘나드는 기인이자 다재다능한 예술인으로 살다 9일 타계한 ‘걸레스님’ 중광(重光). 한줄기 광풍(狂風)이자 인간 자체가 화두(話頭)였던 그는 5일장을 치르는 빈소와 다비식장에서도 숱한 기행과 화제를 낳은 채 한 점 재로 돌아갔다.

그의 다비식은 13일 오전10시 경남 양산시 통도사에서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1시간여동안 진행됐다.

중광 스님은 26세 때인 1960년 통도사로 출가했다. 마지막 남은 육신을 버리기 위한 42년만의 귀거래(歸去來)였지만 스님은 말이 없다.

“거화(擧火), 스님 불 들어갑니다.”

다비식을 진행하는 스님의 말에 이어 참나무 장작이 타오르면서 굴뚝으로 연기가 솟구쳤다.

중광 스님은 불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기행으로 79년 승적을 박탈당했지만 통도사는 그의 육신을 다시 받아들였다. 다비식에 앞서 열린 노제에서는 통도사 주지인 현문 스님이 분향을 했고 같은 사찰 주지를 지낸 태응, 신허 스님 등 30여명의 스님이 참석했다.

통도사 총무국장인 산옹 스님은 “파계냐 뭐냐 이런 것은 틀”이라며 “죽으면 육신을 덮고 있던 그 틀도 깨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종교에 관계없이 20년 가깝게 중광 스님과 교분을 나눠온 요셉 수녀는 다비식에 참석해 “스님은 선하고 멋있게 사셨다. 좋은 곳에 가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로 지리산에서 수행중인 법수 스님은 “형님, 개새끼 니 혼자 가냐”며 담배와 술을 공양한 뒤 방뇨를 하는 등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중광 스님은 2000년 마지막 작품전이 된 전시회 제목을 ‘괜히 왔다 간다’고 붙였지만 누구보다 세상에 많은 말과 행동을 남겼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중앙병원의 빈소에는 신분과 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를 찾는 이를 반긴 중광 스님의 삶에 어울리게 문상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기행도 일어났다.

‘울고 싶어라’를 부른 콧수염 가수 이남이는 “울고 서라아, 어허어허 훠어어훠이, 스님 성불하시구려”라며 빈소에서 노래를 불렀다. 또 이 노래에 맞춰 생전 중광 스님과 친분이 두터운 스님들이 어깨춤을 췄다. 무용을 전공한 이들은 현장에서 춤사위를 펼쳤고 누군가는 창(唱)을 하기도 했다.

상주처럼 장례를 살핀 정우 스님(통도사 서울 포교당 구룡사 주지)은 “중광 스님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살아온 수행자이자 예술가였다”면서 “문상객들이 자기 방식대로 중광 스님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형식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12일 빈소를 찾은 이수성 전 총리는 “중광 스님은 참 수행자였다”고 했고 탤런트 강부자씨는 “감히 내가 중광 스님을 평가할 수 없다”며 정중하게 방송 인터뷰를 사양하기도 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 오현 법장 정휴 스님 등 불교계 중진은 물론 차범석 예술원회장, 김진선 강원도지사, 김봉기 신부(공도 성당 주임신부), 신성일 엄앵란 부부, 탤런트 최불암 고두심, 영화감독 김수용, 가수 김흥국씨 등 각계 인사들이 줄이어 빈소를 찾아 중광 스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그의 무애(無碍)를 기렸다.

양산(통도사)〓김갑식기자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