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임에 따라 과연 미국이 ‘불경기(recession)’를 겪은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제주기에 대한 판단은 향후 미국의 통화 및 재정정책과 직결되는 핵심 사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1일 “상당수의 경제학자들이 경제활동의 감소가 너무 미약했기 때문에 불경기라고 규정한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 논쟁으로 불경기의 개념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불경기 여부에 대한 판단은 국립경제연구국(NBER)의 경제주기 판정위원회가 내린다. 이 위원회는 지난해 11월 “91년 3월부터 시작된 경기상승이 꼭 10년 만인 지난해 3월에 막을 내리면서 불경기에 들어갔다”고 발표했고 지난달에도 이를 확인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내에서 발표된 각종 지표들은 불경기라는 규정을 무색케 하고 있다. 불경기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인 실업률은 올해 1, 2월 연속 감소해 5.5%를 기록했다. 또 생산성은 지난해 4·4분기에 18년 만에 가장 높은 5.2%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내총생산(GDP)도 지난해 4·4분기에 1.2%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분기는 지난해 3·4분기밖에 없다. 통상 경제학자들은 GDP가 두 분기 연속 감소할 때 불경기라고 규정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9일 ‘불경기? 무슨 불경기?’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미국의 이번 불경기는 최소한 30년 이래 가장 짧고 가장 가벼운 불경기였다”고 평가했다.
경제주기 판정위원회가 새로운 지표들을 감안해 불경기가 아니었다고 번복할 경우 미국 정부는 추가적인 경기부양조치를 취하기 어려우며 40년 만에 최저수준인 1.75%의 연방기금 금리도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로버트 홀 위원장(스탠퍼드대 교수)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회견에서 “지금으로서는 위원회가 판정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회는 경제활동의 가장 포괄적인 지표인 분기별 GDP 통계 대신 산업생산 실업률 국민실질소득 도소매거래 등 4가지의 월별 통계를 주요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에서도 실업률은 감소했고 실질소득은 증가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위원회가 불경기 규정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으나 홀 위원장은 “창 밖을 보라. 불경기가 보이지 않느냐”는 말로 이 같은 관측을 일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전문가 분석▼
미국 내에서는 9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주기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50년대 이후 90년대 이전 5번의 불경기는 모두 이중 침체(double dip)를 겪었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곤두박질치는 현상이 보편적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90년대 초 처음으로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적절한 경기조절정책으로 이중 침체를 막았다. 이번에 또다시 이중 침체를 억제할 경우 그는 ‘금리의 마술사’라는 평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향후 이중 침체가 없는 경제주기가 새로운 경제현상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이중 침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어 올해 미국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경제주기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확산될 것으로 보이지만 미 국립 경제연구국이 지난해 3월부터 불경기에 들어갔다는 판단을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불경기(recession)판정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자료들이 축적돼야 한다.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