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다.”
13일 별세한 강원 원주시 문이비인후과 원장 문창모(文昌模·96) 박사가 2000년 의약분업사태로 의사들이 병원 문을 닫았을 때 묵묵히 병실을 지키면서 한 말이다.
고인은 1931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장 대한결핵협회 사무총장 원주기독병원장 등 의료계의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고인을 ‘한국의 슈바이처’로 부르게 된 까닭은 이러한 화려한 경력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95세에 이르러 쓰러져 지칠 때까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술(仁術)’을 펴왔기 때문이다.
고인은 1958년 원주로 이주해 와 1964년 학성동에 문이비인후과를 개원했다. 이후 지난해 3월 건강상의 이유로 의료 활동을 중단하기까지 43년간 원주지역 주민들을 위해 헌신해왔다.
그는 오전 6시 반이면 어김없이 병원 문을 열었는데 ‘일찍 진료를 받고 돌아가야 할 시골환자들을 위해서’가 그 이유였다. 병원비가 없어 애태우는 환자들에게는 무료로 진찰을 해줬다.
특히 고인은 국립 마산결핵요양소장 재임시 우리 사회에 결핵환자가 너무 많이 발생하는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 1953년 결핵환자 퇴치를 위한 대한결핵협회를 조직했고 최초로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기도 했다.
또 한센병 환자촌을 건설하는 등 사회사업 분야는 물론, 교육과 정치 분야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기독교 장로인 그의 이 같은 성실하고 진실된 삶은 독실한 종교적 믿음으로 뒷받침됐다.
원주 제일감리교회 김명기 목사(61)는 “원주 지역에는 고 문 박사의 봉사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그 그늘이 컸다”며 “이제 더 이상 그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비통해 했다.
춘천〓최창순기자 cs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