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또다시 일본을 들끓게 하고 있다. 요도호 납치범의 전처(46)가 “83년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당시 26세)라는 여자유학생을 런던에서 유인해 북한 공작원에게 넘겨줬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이 증언이 갖는 파괴력은 대단하다. 평소의 대북 불신을 부채질하는 데 그 이상 좋은 소재가 없다. ‘납치문제 해결 없이 북-일수교는 없다’는 강경론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북-일 대화와 교섭 분위기도 물 건너간 분위기다.
일본은 그동안 적어도 7건에 10명의 일본인이 북한에 납치됐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증거’가 없었다. 85년 남파됐다 체포된 신광수(辛光洙·72)가 한국 법정에서 “80년 오사카(大阪)에서 일본인 요리사(당시 43세)를 납치했다”고 증언한 게 유일했다. 그런 일본에 이번 증언은 가뭄 끝의 단비인 셈이다.
이번 증언의 파장은 한국에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대북정책이 강경 쪽으로 방향을 틀면 틀수록 햇볕정책은 힘이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언제나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수사적 언사일 뿐이다. 들끓고 있는 대북 불신감을 무시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밀고 나갈 만큼 일본정부는 북한을 중시하지 않는다.
중시하기는커녕 북한을 ‘배려’하던 분위기도 요즘엔 많이 사라졌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본부도 수색하고, 북한 공작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만 가지고 침몰한 배까지 건져 사실을 규명하겠다고 할 정도다.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대북정책은 한미일 3각 공조 속에서 추진하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출범 후 3각 중의 일각이 흔들리더니 이제는 일본이라는 또 다른 일각마저 삐꺼덕거릴 조짐이다. 이래저래 우리 정부만 힘들게 됐다.
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