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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의 톡톡스크린]무단 가위질 = 오노스런 행위

입력 | 2002-03-14 17:42:00


얼마전 영화 ‘알리’의 수입사가 영화의 20%에 해당하는 28분 분량을 왕창 가위질해 문제가 됐었죠.

그런데 ‘알리’에 이어 오늘 개봉하는 ‘존 큐’ 역시 3분 남짓한 분량을 드러낸 것으로 최근 밝혀져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저는 잘라낸 이유를 듣고 웃었는데요,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선수의 금메달을 가져간 오노 때문이더군요.

삭제장면 중에 미국 NBC ‘투나잇쇼’의 진행자인 제이 레노가 2초간 카메오로 출연한 대목이 있거든요. 제이 레노는 김선수사건과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빗댄 농담으로 가뜩이나 오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우리를 또한번 ‘열받게’ 만들었던 바로 그 코미디언이죠.

시사회 과정에서 뒤늦게 제이 레노가 나오는 것을 안 수입사측은 오노에 대한 반감이 관객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들어냈다는 군요.

하긴 ‘금메달 박탈사건’ 이후 미국의 상징처럼 된 맥도널드의 판매도 줄고, 오노가 광고 모델인 나이키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마저 있었으니 영화사 입장에서는 천재지변과도 같은 ‘오노지변’(?)이었던 셈이죠. 영화사측은 일부 장면을 삭제했으나 이로인해 상영횟수가 늘거나 등급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상업적인 의도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도 간혹 수입영화에 가위를 대긴 합니다. 한 예로 ‘패왕별희’의 경우 미국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중국적 상황 일부는 삭제됐답니다. 대신 계약 조건에서부터 ‘재편집권’을 명시하고요.

한국의 경우 ‘무단 가위질’입니다. 게다가 대개는 정서라든가 관객의 이해를 고려한 차원이 아니라 상영횟수를 늘려 돈을 더 벌기 위해서죠.

이전 한국 영화계의 ‘가위손’은 정말 대단했더군요. 80년대 중반에 나온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원래 상영시간은 3시간47분인데요, 국내서는 러닝타임이 1시간 반 정도였답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도 ’가위질’은 여전합니다. 몇 달전 개봉한 거장 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9분이 잘려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음.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를 빌려 말하자면 참으로 ‘오노스러운’ 행위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오노스러운〓형용사. 상대방을 경멸할 때 쓰는 비속어. 비겁하다, 치사하다,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