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거지역의 공기에서 공단 근처와 비슷한 양의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보도는 우리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것은 환경정책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공기가 시화공단이나 인천 매립지의 오염된 공기와 다를 것이 없다니 도대체 이 정부의 환경정책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대규모 아파트촌인 데다 주거환경도 뛰어나다고 알려진 대치동이 이렇다면 다른 곳은 조사하나마나다.
이번에 환경부가 측정한 대기 중 유해물질 가운데 벤젠과 스티렌은 대표적인 발암물질이다. 조사결과 대치동의 벤젠 농도는 매립지 근처인 인천 연희동보다 훨씬 높았고 스티렌은 시화공단 부근을 웃돌았다. 이는 국내 대도시 대기 중 휘발성 유기화합물질이 1만명당 7명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라는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의 조사결과와도 맞아떨어진다. 이러니 최근 암이 우리 국민의 첫번째 사망원인으로 올라선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이들 유해물질에 관한 배출허용 기준조차 아직 없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미 벤젠 등 세 가지 유해물질에 관한 환경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미국은 더 나아가 환경기준뿐만 아니라 이들 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까지 측정하며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어디 선진국뿐인가. 중국도 올해 초 ‘공해와의 전쟁’을 선언한 마당이다. 이처럼 대기 중 유해물질 관리가 환경정책의 이슈로 등장한 지 오래인데도 우리는 기준마련은커녕 이제야 겨우 첫 측정을 했으니 환경후진국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다.
공단도 아닌 주거지역의 대기를 이처럼 오염시키는 주범은 자동차 배기가스다. 따라서 맑은 공기를 되찾기 위한 우선과제는 차량 배기가스 기준을 강화하고 휘발유의 벤젠 함유량을 낮추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기 유해물질에 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에게 건강한 생활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은 국가의 기본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