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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흐르는 한자]千 慮 一 得(천려일득)

입력 | 2002-03-14 18:04:00


千 慮 一 得(천려일득)

慮-생각 려 背-등질 배 陣-진칠 진 謀-꾀할 모 稷-곡식신 직 虛-빌 허

漢(한)의 韓信(한신)이 趙(조)의 20만 대군을 궤멸시킴으로써 유명한 ‘背水陣’(배수진)의 고사가 나왔다. 물론 여기에는 韓信의 뛰어난 計策(계책)도 있었지만 趙나라의 실수도 큰 몫을 했다.

韓信이 趙를 치려고 하자 趙의 廣武君(광무군) 李佐車(이좌거)는 成安君(성안군) 陳餘(진여)에게 3만 명의 군대만 보내주면 韓信이 쳐들어오는 길목을 끊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成安君은 이 말을 듣지 않고 결국 大敗하여 죽고 만다.

양국의 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 韓信은 陣中(진중)에 천금의 현상금을 내걸고 李佐車를 생포하도록 했다. 李佐車라면 趙王(조왕)의 뛰어난 謀士(모사)로 전쟁의 승패는 그를 잡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어느 날 부하가 그를 묶어 바쳐옴에 따라 韓信은 의외로 쉽게 그를 생포할 수 있었다. 韓信은 李佐車를 깍듯이 모시고는 上座(상좌)에 앉혀 스승으로 모셨다. 韓信이 물었다.

“이제 우리는 북으로 燕(연)을, 동으로 濟(제)를 칠 계획이오.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겠소? 삼가 高見을 듣고 싶소.”

“예로부터 敗戰(패전)한 장수는 用兵(용병)을 말하지 않으며, 亡國(망국)의 大臣(대신)은 社稷(사직)의 存立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본디 背水陣은 그가 즐겨 사용하던 방법. 韓信은 그의 입을 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워낙 집요하여 李佐車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 실수는 있는 법이고(智者千慮, 必有一失),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쯤은 맞는 법입니다(愚者千慮, 必有一得). 그래서 聖人(성인)도 때로는 미치광이의 말을 듣는 수가 있습니다(狂夫之言, 聖人擇焉).”

이렇게 운을 뗀 그는 장단점을 들어가면서 韓信을 설득해 치는 것을 포기토록 하고 대신 先虛後實(선허후실·먼저 적을 안심시킨 다음 침)의 작전으로 燕을 달래게 해 燕나라는 저절로 복종하게 되었다.

사실 ‘智者千慮’(지자천려)는 陳餘(진여)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는 百戰百勝(백전백승)의 計策을 갖고 있었지만, 어쩌다 한 번 실수로 하루아침에 敗將(패장)이 되어 죽고 말았다.

반면 ‘愚者千慮’(우자천려)는 李佐車 자신을 지칭한다. 비록 생각이 보잘것없지만 아는 데로 말하겠다는 뜻이다. 이 때부터 千慮一得은 자신의 겸손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