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과 성욕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욕구는 무수히 많지만 가장 원초적 욕구가 바로 식욕과 성욕 두 가지다. 좀더 고차원적인 표현을 빌리면 개체보존 욕구와 종족보존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인류 문명과 역사 창조에는 수많은 ‘인간 에너지’가 소요됐다. 이 에너지의 근본은 바로 음식이 제공하는 열량이며, 에너지 공급의 중단은 곧 인간 개체의 ‘죽음과 소멸’을 의미한다. 살아남으려는 개체보존의 욕구는 좀더 많은 음식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종족을 잉태해야 하는 종족보존의 성욕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성욕과 식욕은 밀접한 관계로 인간의 일상사에 영향을 끼쳤고, 이는 예술 작품 속에서도 가끔 연관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령 과일로 묘사된 그림 속의 성기나 기이한 음식 속에 나신이 찍힌 사진 등이 바로 그것.
식욕과 성욕은 영화적 소재로도 종종 사용되곤 한다. 한동안 국내 수입이 보류되었던 폴란드 감독의 영화 ‘샤만카’에는 광적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을 떠나려 하자 남자를 죽이고 그의 뇌를 숟가락으로 파먹는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은 죽은 애인의 피를 끼얹은 뇌를 먹음으로써 비로소 미완성의 섹스(사랑)를 완성하고, 육신의 일체감을 정신적 일체감으로 승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국내에도 성욕과 식욕을 주제로 한 영화가 있었다. ‘301, 302’라는 제목의, 조금은 오래된 영화지만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이 영화는 남편과의 성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 먹는 것으로 욕구를 해결하려는 걸식증 여성과 어릴 때 성폭행 경험으로 음식만 보면 구역질을 일으키는 거식증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처럼 섹스를 거부당하면 무조건 많이 먹고, 섹스를 금지당하면 못 먹는다는 간단한 공식이 성욕과 식욕 사이에 이론적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음식이 섹스를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 육류나 술, 설탕 등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은 공격적이며 자기만족 위주의 섹스를 추구하는 반면, 야채나 우유, 초콜릿 등은 섹스를 온순하게 바꾸고 타인을 배려하려는 마음가짐이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성욕에 따라 식욕을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 곽태일/ 맨파워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