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머씨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122쪽 6500원 열린책들
“나를 좀 제발 놔두시오.”
소설 ‘좀머씨 이야기’에 나오는 좀머씨의 독백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대사로 남아 있다.
‘좀머씨…’는 92년 11월 초판이 발간돼 48쇄까지, 99년 신판이 10쇄까지 나오는 등 총 80만부가 팔린 책이다. 요즘도 한달 평균 3000∼4000부 정도 주문이 들어온다는게 출판사의 설명.
이 책은 적은 분량의 ‘동화 같은’ 소설이지만 남녀노소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 장 자끄 상뻬의 삽화도 정감어린 느낌을 준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좀머씨는 이상한 지팡이를 쥔 채 무언가 쫓기는 사람처럼 이 마을 저 마을을 마냥 걸어다닌다. 한 소년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기이하기 그지없다. 좀머씨는 기계문명에 억눌린 인간의 ‘순수’를 의미한다. 자신을 ‘놓아 달라’는 외침은 삭막한 현실로 부터 상처입은 순수한 영혼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주부 문현자씨(58)는 “‘좀머씨…’를 읽고 시간과 일에 쫓기는 나를 스스로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바쁜 일상이지만 가끔 어렸을 적 동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열린 책들’이 92년 ‘좀머씨…’ 해외 판권 계약을 맺을 당시의 일화 한토막. 이 소식을 듣고 “이미 번역을 했는데 내 걸로 써달라”는 번역가들이 몰려들었다. 역자들에게도 ‘좀머씨…’는 ‘대박 느낌’이 들었던 것.
하지만 이 책은 초판 발매 당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다 3년 뒤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했다. ‘열린책들’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독자들에게 생소한 느낌이었는지 별 반응이 없었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갑자기 주문이 쇄도했다”고 말했다.
비록 소설속의 좀머씨는 죽음을 맞지만 ‘천천히 삶의 여유를 찾아보라’는 교훈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