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5명이 베이징(北京) 주재 스페인대사관을 이용해 망명에 성공한 이번 사건으로 중국 내 탈북자 문제가 국제적 조명을 받는 본격적인 인도주의적 이슈로 떠오르게 됐다. 특히 사건 발생에서 해결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와 국제기구, 인권단체들이 관련됨으로써 단순한 ‘탈북’ 이상의 의미를 갖는 복합적인 국제 문제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탈북자 문제 국제 현안으로〓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탈북자들이 유럽연합(EU)의 의장국을 맡고 있는 스페인의 대사관을 선택해 EU를 끌어들인 점, 다른 하나는 한 가족의 범위를 넘는 집단 망명의 성격을 띠고 있어 탈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장길수 일가족의 한국행 이후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와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 ‘국경 없는 의사회’ 등이 잇따라 조사 결과와 성명을 발표하면서 북한과 중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주장은 한마디로 탈북자에 대해 난민지위를 인정해주고 원하는 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을 터주라는 것. 그러나 관련 국가들은 대사관 점거 농성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로 비화될 경우에 한해 인도주의적 해결을 모색하는 사안별 처리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조차도 난민지위 인정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차관보는 14일 “이 문제는 쉽게 답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모든 탈북자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탈북자들이 어디로든 희망하는 대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과연 북한에 주민이 얼마나 남을 것인지를 생각하면 중국의 입장을 이해할 만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대규모 탈북으로 인한 북한의 내부 공동화와 이로 인한 중국과 한국의 난민 수용부담 등 예상되는 어려움을 지적한 것. 스페인도 인도주의적 해결을 강조했을 뿐 국제법적인 탈북자의 지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런 상황에서 탈북자들은 대사관 점거와 같은 목숨을 건 시도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외길로 몰리고 있다. 그럴수록 이 문제를 국제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려는 국제인권단체들의 활동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6개국의 이해득실〓이번 탈북자 25명의 망명 허용이 탈북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지만 관련 당사국들간에는 이해득실이 교차했다.
먼저 스페인은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탈북자의 망명을 무난히 이끌어냄으로써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스페인은 탈북자들이 베이징 주재 자국 대사관에 진입한 첫날부터 “인간의 기본권인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미국과 일본도 약간의 반사이익을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가 다시 한번 드러남으로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 국가 중 하나로 지목한 자신의 발언(1월 28일 연두교서)에 대한 정당성을 보강하는 효과를 얻었다. 일본도 같은 이유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해 일본 측 주장의 정당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탈북자에 대한 망명 허용으로 겉으로는 인권을 존중한다는 이미지를 내외에 과시했으나 더 많은 북한주민들로 하여금 이런 식의 탈북을 도모하도록 촉발시키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북한은 체제의 취약성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국제적 고립과 주민의 북한 탈출로 인한 내부 공동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번 사건이 신속히 처리됨으로써 외교적 부담은 덜었으나 남북관계가 더 껄끄러워질 소지가 생겼다는 점이 부담이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탈북자 수용능력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불가피해졌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