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 사상 처음으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가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에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고 세계 시장에 배급한다.
한국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권혁조 사장, 시네마서비스 회장 강우석 감독과 김정상사장, 한맥영화사 김형준 사장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할리우드의 콜럼비아 트라이스타가 1970년대 실미도 사건을 배경으로 한맥영화사가 제작하는 영화 ‘실미도’(가제)에 최대 1000만달러(약 135억원)의 제작비를 전액 투자하고 영화가 완성되면 미국 등 세계 시장에 배급하기로 최근 계약했다”고 밝혔다.
강우석감독은 올 여름부터 촬영에 들어가 내년 여름 방학 시즌에 개봉할 계획이다. 투자사인 콜럼비아 트라이스타가 세계 시장 배급권만 갖고 국내 배급은 시네마서비스가 맡기로 했다.
그동안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의 국내 법인이 비디오 판권 시장 등 국내 영화 시장 개척 용으로 국내 영화 제작비를 부분 지원한 적은 있었으나, 100억원 규모의 제작비를 전액 투자키로한 것은 이번이 처음. 이는 지난해부터 본격화 된 한국 영화 열풍과 그 경쟁력이 세계 영화 시장의 본거지인 할리우드에서 본격 공인됐다는 것이 영화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해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 등 국내 히트작의 리메이크 판권이 할리우드에 팔리기 시작했다.
권혁조 한국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사장은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본사는 수년 전부터 한국 영화의 세계 시장 진출 가능성을 주목해왔다”며 “한국과 미국 영화계가 윈윈(Win Win)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한맥영화사 김형준 사장은 “1999년 출간된 백동호씨의 장편소설 ‘실미도’의 판권을 사들인 후 작가를 여섯 번 바꿔가며 작업한 끝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며 “한국적 분단 현실을 담고있으면서도 세계 관객들에게 고루 어필할 수 있는 소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가 한국 영화의 본격적인 세계 시장 공략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아직 촬영 장소를 정하지는 않았으나 인천 앞바다에 있는 실제 실미도에서 촬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강감독은 평소 ‘강우석 사단’으로 분류돼온 박중훈 이성재 설경구 등을 주연배우로 기용할 의사를 밝혔다.
실미도는 인천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1968년 김신조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박정희 정권이 극비리에 사형수 등을 북파 공작원으로 양성한 곳. 하지만 이후 남북관계의 변화로 북파가 지연되고 섬에 고립되자 불만을 품은 공작원들이 1971년 경비병들을 사살하고 섬을 탈출, 탈취한 버스로 청와대로 향하던 중 서울 영등포에서 모두 자폭한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 '실미도' 연출 맡은 강우석 감독
‘실미도’의 연출을 맡은 강우석 감독(42)은 “사실 굳이 연출을 맡지않아도 될 ‘모험’”이라면서도 “언젠가는 도전했어야할 ‘숙제’가 떨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의욕적이고 호탕한 평소 모습과는 달리 기자회견 내내 다소 긴장한 표정의 강감독은 “나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세계 관객들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액션 코미디를 주로 해왔는데, 분단의 비극은 실미도 사건을 어떻게 접근할 건가?
“일단 코미디는 배제하려한다. 하지만 ‘투캅스’ 등 남성 중심을 영화를 만들면서 쌓은 스타일은 고집하려 한다. 아무래도 액션 드라마가 될 것이다.”
-실미도에서 촬영을 할 수 있나?
“정부 당국과 접촉할 계획이다. 촬영한다면 그 곳을 유니버설 스튜디오처럼 테마 파크로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박중훈 등 친한 배우들을 또 쓰나?
“아무래도 그동안 호흡을 같이 했던 배우들이 파트너로서는 최적일 것이다. 몇몇 배우들에게는 이미 ‘몸을 만들어 놓으라’고 얘기해뒀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 한국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권혁조사장
미국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본사로부터 제작비 전액 투자를 끌어낸 한국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권혁조 사장(49)은 “‘실미도’ 시나리오 정도면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미국 본사에서도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콜럼비아 트라이스타가 강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중견 감독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 온 점이 어필했다고 본다. 최근 ‘공공의 적’의 성공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금 한국 영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동남아 권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한국 영화가 단연 강세다. 할리우드가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 영화는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투자자인만큼 본사에서 생각하는 제작 방침이 있을 듯 하다.
“영화의 방향은 일단 전적으로 한국 스태프들에게 맡길 것으로 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