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金槿泰)와 박근혜(朴槿惠), 두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대통령의 딸과 그 대통령의 독재에 저항했던 두 인물의 상반된 이미지에서 오는 부조화(不調和) 탓일 게다. 이미지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박근혜씨가 자신의 당내 민주화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언뜻 느껴지던 당혹감에도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미지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선입견은 당사자에게 대단히 부당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씨의 오늘이 있기까지 ‘아버지의 후광(後光)’이 절대적이었다면 그 이면의 그림자 역시 그가 감당하고 털어내야 할 몫이다. ‘박정희(朴正熙)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는 여전히 뚜렷한 명암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정치인 박근혜’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통과해야 할 ´국민적 검증대´▼
그는 얼마 전 ‘한국일보’ 장명수(張明秀) 발행인과의 대담에서 “내가 민주주의에 남다른 의식을 갖는 것은 바로 아버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이 우선 근대화를 이룬 다음에 민주화를 이루려고 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는 만큼 자신이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딸로서 당연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물적(物的) 토대가 없는 민주주의는 허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혀 틀린 논리는 아니다. 하지만 ‘딸의 믿음’이란 가정만으로 아버지의 장기 독재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박근혜씨가 한나라당 부총재였던 지난해 5월 그는 이회창(李會昌) 총재에게 ‘박정희관(觀)’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짐작하건대 아버지의 근대화 업적을 인정하라는 채근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그의 논리는 함정에 빠진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남다른 의식’이 그 정도의 역사관에 머물러 있다면 그의 사명은 참으로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아무튼 박근혜씨는 이제 신당설의 중심 인물이자 유력한 대선 후보의 한 명으로 떠올랐다. 그 자신 여성 대통령에 대한 희망도 감추지 않는다. 그 희망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거품에 지나지 않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박정희의 딸’에서 벗어나 ‘정치지도자 박근혜’로 온전히 거듭나지 못한다면 그 희망은 부질없는 ‘한낮의 몽상(夢想)’에 그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제 사실상 처음이라고 할 ‘국민적 검증대’를 통과해야 한다.
‘김근태의 좌절’을 ‘박근혜의 희망’에 이어 말하기는 얼마간 곤혹스럽다. ‘박정희의 딸’이 당당하게 민주주의를 외치며 정당 문을 박차고 나올 때 그는 이른바 민주화 동지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그에게 2000만원을 줬다는 ‘동교동계 좌장’은 그가 “하도 징징대서 줬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모욕당했다. 그는 제주와 울산 경선에서 고작 26표밖에 얻지 못했다. 참담한 꼴찌였다. “너 혼자 깨끗하냐”는 냉소의 분위기가 그를 철저하게 따돌렸다. 그의 ‘양심고백’은 바깥에서는 지지를 받았지만 안에서는 비아냥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를 그렇게 내치는 가운데 ‘선거혁명’이라는 국민경선제는 마구잡이 동원경쟁과 금품 살포로 얼룩졌다. 그러면서도 민주당 내에서 들리는 소리는 ‘장사가 된다’는 환호가 주류다. 주말에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순위 다툼으로 국민의 이목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꼴찌’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 ‘아름다운 꼴찌’가 되려 했으면 끝까지 가야 했다.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끝까지 남아 깨끗한 정치를 위한 그의 뜻을 온몸으로 보여야 했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그는 너무 빨리 그의 사명을 포기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부각시키는 데 실패했다.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의 좌절이 ‘정치인 김근태의 실패’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는 늘 “꿈과 희망이 있어야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95년 “현실정치를 바꿔놓겠다”며 제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바꿔놓기에는 현실정치의 벽이 너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한계를 뒤돌아봐야 한다. 너무 신중하다가 결단의 시기를 놓친 적은 없었는지, 명분과 이상론에 치우쳐 냉정한 현실인식의 균형을 잃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그는 ‘희망은 힘이 세다’고 했다. 좌절은 희망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절망도 힘이 될 수 있다. 그는 지금은 침묵할 때라고 했다. 그러나 정치판은 다시 어지러운 이합집산(離合集散)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다시 일어서 희망을 얘기해야 한다. ‘그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