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동굴과 포근한 강변을 물에 묻어/천년을 함께 살아온 반딧불이와 수달이/날개를 늘어뜨리거나 어깨가 처져서/갈 곳 없어 비슬거리게 해서는 안 된다/이 나라에 넘치는 땅의 향기가/갑자기 악취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동강댐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1999년 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썼다. 당시 댐 건설 백지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전 국민적이라고 할 만큼 높았다.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종교계 학계 등이 앞다퉈 나섰고 나중에는 각계인사 33명이 밤샘농성까지 했으니까. 결국 처음엔 댐 건설에 힘을 실어주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개인적으로는 댐 건설에 반대한다”며 슬그머니 환경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동강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강원 영월 평창 정선군을 끼고 흐르는 한강 최후의 비경이라는 점은 둘째 치더라도 수달 어름치 등 천연기념물만 12종에 이른다. 또 보호대상종이나 고유동식물도 집단 서식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생태계의 보고라니 물 얻겠다고 흉물스러운 댐을 쌓아 이들을 고스란히 수장시키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동강의 자연가치가 한해 1118억원에 이른다는 학계의 보고서도 나와있다.
▷정작 문제는 다음에 벌어졌다. 댐 건설이 백지화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동강은 허연 거품이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강이다. 카페와 음식점이 촘촘하게 들어선 강 주변 모습은 경기 남양주시의 양수리 카페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래프팅을 한다며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들이 떠난 자리엔 으레 쓰레기가 넘쳐난다. 강바닥 다슬기까지 보이던 맑은 물은 탁한 2급수로 전락했고 심심찮게 나타나던 비오리와 수달도 사라진 지 오래다. 동강이 전혀 동강답지 않으니 이제는 ‘차라리 댐을 세웠더라면…’하는 자탄의 목소리까지 들린다.
▷일본 시코쿠(四國)에 사만토가와(四萬十川)라는 강이 있다. ‘일본 최후의 비경’으로 불리던 이 강도 한때 관광객 때문에 동강처럼 몸살을 앓았던 모양이다. 그러자 처음엔 짭짤한 수입 때문에 좋아하던 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솔선해서 ‘사만토 헌장’을 만들고 환경보호에 나선 끝에 맑은 물을 되찾았다고 한다. 지자체가 앞장서 난개발을 부추기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환경부가 동강일대를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장 불이익을 당하는 이는 분통이 터지겠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도 전 국민의 염원을 담은 ‘동강 헌장’ 하나 만들면 어떨까 싶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