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학교 입시 전형에서 수학 화학 등 순수 자연과학 및 공대의 지원율이 저조했다고 한다. 인문과학에 대한 기피 현상에 이어 나타난 것으로 상당히 우려되는 현상이다.
대졸 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예비 대학생들이 ‘돈벌이가 안 되는’ 학문을 공부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기초학문의 부실은 결국 국가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심각한 문제이다.
이러한 현상을 겉으로 드러난 문제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 이면에는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에만 매달리는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병폐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근시안적 행태’는 대학의 학과 선택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경기 회복의 ‘키워드’를 쥐고 있는 정보기술(IT)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벤처캐피털은 짧은 시일 안에 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에 공개돼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벤처기업에 주로 투자한다.
개인용 컴퓨터(PC) 산업을 보자.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한 PC는 기술적 진보를 바탕으로 그동안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최근 세계 경제의 불황과 IT 산업의 침체로 PC 산업은 어려운 고비를 맞고 있다.
메이저 리거 김병현 선수를 내세운 TV 광고를 만드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벌여온 조립PC업체 아이돔은 얼마전 좌초하고 말았다. 사업 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한데다 PC 업체들 사이의 저가 경쟁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메이저 PC 업체들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PC업체들의 2001년 재무제표를 보면 대부분 경상이익률이 1% 미만이다. 제조원가에 근접하는 싼 값에 제품을 팔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근시안적 투자로 인한 ‘기본기’ 결여에 있다. 지금까지 한국 PC 제조업체들은 생산라인을 늘려 단순조립 형태로 많은 물량을 만들어내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PC경기가 괜찮을 때는 이런 방법이 잘 먹혔지만 경기가 침체하자 바로 저가 경쟁 및 수익성 악화로 연결됐다.
단순한 생산만 가지고는 21세기의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고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적용시켜야 한다.
미장원 당구장 복덕방 등에 특화한 솔루션을 얹은 PC를 만들어 내고 무선통신이 뜨면 그 분야에서 사업의 기회를 엿봐야 한다. 단순히 하드웨어만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연구개발과 생산, 마케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지금 당장 생산라인이 늘지 않더라도 미래의 시장을 뚫을 수 있는 기술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 PC업계의 매출이 조금씩 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시 PC 경기가 좋아진다고 해도 기업들은 최근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물량 늘리기에 집중해서는 안될 것이다.
PC산업은 경기변수를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개인휴대단말기(PDA), 웹패드, 태블릿 PC 등 ‘포스트 PC’에 의해 그 존재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이번 기회에 ‘기본기’를 탄탄히 해놓지 않는다면 PC산업은 영영 재도약의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
조정태 LGIBM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