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무역전쟁의 총성이 울렸다.
EU의 15개 회원국 정상들은 16일 미국의 수입철강 관세부과 조치에 대해 미 상품 수입제한 검토 및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EU집행위원회가 내놓은 보복 조치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16일 바르셀로나에서 정상회담을 끝내면서 폐막 성명을 통해 “EU집행위는 미국이 철강 부문에 도입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깊은 우려 속에 주시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발표했다.
이에 따라 WTO의 분쟁 해결절차에 따른 미국과 EU간 양자협의가 19일 열리게 됐다. 이 협의에서 타협을 이뤄지지 않을 경우 EU는 WTO에 분쟁 패널 구성을 요구하는 한편 대미 수입품들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이에 앞서 EU집행위는 대미(對美) 보복조치를 취할 경우 관세부과 대상이 될 미국산 수입품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무역 전쟁〓무역전쟁이 심화될 경우 불똥이 정치분야로까지 튈 수 있어 주목된다. EU는 미국의 대 테러전쟁에 동참했지만 대 이라크 공격에 대해서는 차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 대항해 EU의 갈릴레오 GPS를 개발키로 합의한 것도 대미 결전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GPS가 우주무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로 EU측의 개발을 반대해 왔다.
그러나 양측의 무역전쟁이 극적인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관세부과 결정은 11월 미 중간선거를 의식한 것이므로 선거가 끝난 뒤 어떤 형태로든 원만한 해법이 모색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상회담에서의 기타 합의〓EU 정상들은 이번 회담에서 에너지시장 부분 개방, 노동시장 탄력성 강화, 퇴직연령 연장 등 주요 경제개혁 조치에 합의했다. 난제였던 에너지시장의 개방은 국내 선거를 이유로 반대했던 프랑스의 양보를 얻어 부분 개방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EU 에너지시장이 2004년까지 산업 및 상업용에 한해 개방된다. 가정용 에너지 시장 개방 논의는 1년 이내에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이밖에 EU 역내에서 △2010년까지 연구개발 투자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3%로 끌어올리고 △평균 퇴직연령을 현행 58세에서 65세로 연장하며 △직장여성 탁아 수혜율을 90%까지 높이기로 했다.
정상들은 중동사태에 대해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권고한 유엔결의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또 지난 주 실시된 짐바브웨 대선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실시됐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해 짐바브웨 정부에 추가 제재가 단행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