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5명의 한국행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관련국간의 물밑 외교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워낙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혼선도 적지 않았다.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프랭클린 에브달린 필리핀 외교부차관은 15일 오후 필리핀주재 손상하(孫相賀) 대사를 만난 뒤 “탈북자들이 16일 한국으로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탈북자 문제에서 빨리 손을 털어버리겠다는 의도가 역력했다. 당초 이들에 대해 18일 입국을 추진했던 우리 정부의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로서는 불평을 할 입장이 못됐다. 필리핀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 경우 향후 탈북자 문제에 대한 협조 요청시 어려움만 가중될 수 있기 때문.
이에 따라 정부는 필리핀 외교부의 발표 직후 이태식(李泰植) 외교부 차관보를 통해 “입국 일자가 16일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필리핀 현지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필리핀 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탈북자의 한국행을 서둘 필요가 없다는 논의가 제기된 것.
한국측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은 밤늦은 시각.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밤늦게 한국측 입장을 배려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탈북자들의 입국 일자가 다시 늦춰지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 직후 로일로 골레스 필리핀 국가안보보좌관은 공항에 나와 “(탈북자들이) 3일 내로 필리핀을 떠날 것”이라고 새소식을 전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탈북자 추방 결정 과정에서 북한과의 관계 등을 고려, 우리 정부측에 여러가지 ‘조건’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이 경유지인 필리핀을 곧바로 떠나지 않아야 하며, 한국 입국시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기자회견을 피해달라고 주문한 것이 이런 조건들. 중국측은 특히 탈북자들이 필리핀에서 곧바로 한국으로 떠날 경우 북한측으로부터 “중국이 이들의 한국행을 허용했다”는 항의가 제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정부가 탈북자들의 입국 시기를 18일로 조정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이나 탈북자들의 입국 기자회견을 생략키로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