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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영화속 사랑]'섬머타임 킬러', 본능은 못말려

입력 | 2002-03-18 18:39:00


얼마 전 밤거리의 노점상에서 ‘섬머타임 킬러’(Summertime Killer·1972)의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을 때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초등학교 시절에 보고 홀딱 반해 극장에서만 너댓번을 봤던 영화다.

혹시나 희귀본으로 꼽혀 ‘마니아 가격’을 부르지나 않을까 해서 짐짓 딴청을 피우며 슬쩍 떠봤더니 단돈 천원이란다. 이건 횡재다.

영화는 전형적인 복수극이자 청춘영화다. 여기 아버지가 네 명의 사나이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꼬마가 있다. 그는 금발을 나부끼며 오토바이를 타는 멋진 청년 레이(크리스 미첨)로 성장한 뒤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아버지의 원수들을 하나 하나 찾아내어 처단해나간다.

그 복수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면 영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세 번까지는 성공했지만 마지막 남은 네 번째 복수가 여의치 않다. 결국 그는 원수의 딸 타냐(올리비아 하세)를 납치해 기회를 노린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빤하다. 그는 원수의 딸과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남자의 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죽이려는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물어보면 심각한 질문이 되겠지만 영화는 단순한 답변을 돌려준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왜? 설명할 길이 없다. 언제는 사랑이 논리적으로 피어났던가? 그들은 광활한 호수 위에 홀로 떠 있는 보트하우스에 고립된채 서로를 죽일 듯이 으르렁대다가 결국엔 저도 모르게 마음과 몸을 연다. 윤리나 도덕의 잣대를 들이밀기에는 그들이 너무 젊고 아름답다. 특히 올리비아 하세는 그녀가 출연했던 모든 영화들을 통틀어 가장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젠장, 그런 처녀와 밀폐된 공간에서 며칠씩이나 부대끼면서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섬머타임 킬러’에서 사랑은 본능에 가깝다. 그것은 이성과 판단의 저편에서 제 멋대로 꿈틀대는 생명력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레이와 타냐가 둘만의 공간 속에 갇혀 있다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뜻에서 그들은 아담과 이브다. 선택의 폭이 없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노닐던 인류 최초의 애인 아담과 이브에 대한 조크 하나. 나른한 정사를 나눈 뒤 이브가 물었다.

“나 사랑해?”

아담은 후다닥 일어나 그 동안 속고 살았다는 듯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당신말고 딴 여자도 있었단 말이야?”

시나리오작가 simsan8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