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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화경/아! 김득구

입력 | 2002-03-18 18:39:00


이따금씩 TV에 나오는 무하마드 알리의 모습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쉴 새 없이 떨리는 손과 얼굴 근육, 어눌한 말과 굼뜬 발걸음….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던’ 왕년의 챔피언다운 면모는 이제 없다. 알리가 누구인가. 세 차례나 헤비급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최고의 복서가 아닌가. 그런 그에게 남은 미래는 실어증과 파킨슨병에 시달려야할 말년뿐이다. 그를 이렇게 만든 게 바로 펀치드렁크다. 아무리 발이 빠르다는 소리를 들은 알리였지만 복싱을 하다보면 머리를 얻어맞기 마련이다. 이렇게 쌓인 크고 작은 충격이 그를 폐인으로 만들었다니 영웅의 말년치고는 기막히다.

▷영화 ‘로키’도 그렇지만 몸뚱이 하나를 밑천 삼아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는 데는 프로복싱이 그만이다. 잘해서 세계 챔피언만 되면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굴러 들어오니까. 그래서인지 예나 지금이나 복서 지망생 가운데는 춥고 배고픈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프로복싱을 ‘헝그리 스포츠’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게다. 그런 만큼 위험도 크다. 1884년 프로복싱이 시작된 이래 경기도중, 또는 직후에 사망한 선수가 500명이 넘는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프로복서 가운데 80% 이상이 머리에 이상을 느낀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23세의 김득구가 조그만 관을 들고 미국으로 떠난 것은 1982년 늦가을이었다. 14세 때 무작정 상경해 구두닦이 껌팔이를 하며 바닥을 전전한 그에게도 세계 챔피언은 세상으로 나갈 유일한 탈출구였다. 관은 챔피언이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는 무언의 다짐이었으리라. 혈투를 거듭하던 그는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인 14회 의식을 잃고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콩팥과 심장을 떼어준 뒤 자신의 말처럼 관에 누워 돌아왔다. 이듬해 어머니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유복자를 가졌던 약혼녀마저 잠적했으니 불행의 끝은 길고도 길었던 셈이다.

▷김득구가 떠난 지 꼭 20년째인 올해 그의 짧은 일생을 그린 영화 ‘챔피언’이 미국 현지에서 촬영중이다. 엊그제에는 그에게 죽음의 펀치를 날렸던 레이 맨시니가 로스앤젤레스 촬영장을 찾아 주인공을 맡은 배우 유오성과 함께 김득구를 회상했다고 한다. 요즘은 복서 지망생이 크게 줄었다. 사는 형편이 나아져 구태여 젊은이들이 목숨걸고 글러브를 낄 일이 줄어든 것은 다행이지만 김득구가 보여준 지칠 줄 모르는 ‘헝그리 정신’도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