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경제 포커스]보험범죄 기승… 年 1兆 샌다

입력 | 2002-03-19 17:14:00



빚 독촉에 시달리던 30대 초반의 A씨는 지난해 아내에게 H보험사의 자동차관련 장기손해보험에 가입하게 했다. 부인은 이미 2개의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A씨는 부인을 태우고 차를 몰고 가다 고속도로 지하차도 옹벽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고 이 사고로 부인은 사망했다.

H보험사는 부인이 보험 가입 후 사흘만에 사고가 난 것을 이상하게 여겨 검찰에 추가수사를 요청했다. 검찰은 A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사고를 냈다는 결론을 내리고 올해 1월 살인죄로 기소했다. A씨는 부인 사망으로 7억2000만원의 보험금을 받기로 돼 있었으나 결국 한푼도 받지 못했다.

‘허위진단서 발급에서 방화, 살인까지….’

보험범죄가 갈수록 흉악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교통사고 브로커가 개입해 보험금을 더 많이 타내도록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조직폭력배가 동원되는가 하면 보험금을 노리고 가족을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기로 인해 누출되는 보험금 지급액을 연간 1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연간 총 보험금 지급액(11조원)의 10%에 가까운 수준이다.

▽병원의 의료비 허위청구〓병원에는 속칭 ‘나일론 환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교통사고로 입원했지만 실제로는 활동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다. 아침에 병원에서 나가 일하다 밤이면 입원실로 들어와 고스톱을 치면서 술을 마신 택시기사도 있다.

병원에서도 이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치료가 필요 없지만 치료했다고 기록하고 보험사에 청구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주로 중소형 병·의원에서 많이 벌어지는 일이다. 서울 동대문구 G의원은 택시기사가 교통사고로 찾아와 통원치료만 했는데도 45일간 입원한 것으로 기록해 보험사에서 400만원을 받아냈다가 들키기도 했다.

금감원과 보험업계가 공동으로 작년 7∼12월 전국의 병·의원을 상대로 허위진단서 발급, 진료비 과다청구 등을 조사한 결과 57개 병·의원과 284명의 혐의자를 수사 의뢰했을 정도.

손해보험사 조사담당자들은 “매년 나일론 환자를 적발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벌이지만 병·의원의 협조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불법브로커가 판친다〓보험사기의 주범은 병원에 환자를 유치해주고 대가를 받는 전문브로커. 이들은 병원장이나 병원사무장과 짜고 보험금을 타낸다.

브로커 B씨는 축구를 하다가 인대를 다친 문모씨를 스포츠상해보험에 가입시켰다. 이른바 ‘사고후 보험가입’이다. B씨는 미리 결탁한 병원에 문씨를 입원시키고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이런 방법으로 타낸 보험금 1800만원 가운데 대부분을 브로커와 병원이 나눠가졌다.

경기도 H의원의 관리부장은 지역 선후배들과 함께 일부러 사고를 낸 뒤 자기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도록 해 7개 보험사에서 2억7000만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보험사기에서 가장 많은 유형은 운전자 바꿔치기. 예를 들어 운전자가 26세 이상 한정운전에 가입했을 경우 26세 미만의 가족이 운전하다 사고를 내면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 이때 부모 등이 운전한 것으로 허위 신고하는데 여기에 브로커와 병원사무장이 개입한다.

▽조직폭력배도 뛰어들었다〓지난해 대전에서는 조직폭력배 163명이 개입된 대규모 보험사기단이 적발됐다. 이들은 다른 차량의 중앙선 침범을 유도하는 유도차량조, 고의로 사고를 내는 충돌차량조, 보험처리 및 형사합의를 주도하는 합의조 등으로 일을 분담하고 사고를 유도했다. 편도 1차로 도로에 차를 세워놓으면 진행하던 차는 중앙선을 넘어 진행하기 마련. 이때 맞은 편에서 차를 몰고 와 고의로 충돌한다. 이들은 피해자와 보험사로부터 합의금, 치료비, 수리비 명목으로 4억3000만원을 받아냈다.

서울에서는 폭력배 12명이 교통사고를 내고 허위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사고 내용이 석연치 않아 보험사 직원이 조사를 시작하자 폭력배들은 이 직원을 납치, 협박해 3억원을 받아냈다.

▽보험업계, “당할 수만은 없다”〓보험범죄는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의의 가입자들로선 부담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 또 보험사의 수익성과도 직결된다. 보험사기가 늘자 보험업계는 현재 경찰과 함께 보험범죄방지협의회를 구성해 적극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전국 230개 경찰서와 14개 지방경찰청에는 보험범죄 전담수사관 765명이 배치돼 있다.

▼美, 연방조사기구 별도로 둬▼

금감원은 장기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처럼 보험사기조사 전문기관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보험사기를 탈세 다음으로 중요한 경제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먼저 연방보험사기방지국(NICB)은 회원으로 가입된 1000여개 보험사와 함께 보험사기자 및 도난차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각 주마다 설치된 보험사기방지국(IFB)은 검찰 및 경찰과 함께 보험사기를 조사하고 검찰이 기소하는 시스템이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