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필 박사와 연구원이 소의 난소에서 주사기로 복제에 사용할 난자를 뽑아내고 있다.
《매일 아침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마리아바이오텍 부설 생명공학연구소에는 가락동 도축장에서 새벽에 구한 신선한 소 난소 50여개가 도착한다. 난소를 담은 보온통 뚜껑이 열리면서 연구원 15명의 손놀림은 빨라지기 시작한다. 연구원들은 우선 난소에 주사기를 찔러 난자를 뽑아낸다. 이 난자들을 인큐베이터에 넣고 39℃에서 24시간 성숙시키면 난자는 정자를 받아들일 태세가 된다. 실제로 길 건너편 마리아병원에서는 이렇게 불임여성에게서 채취한 난자를 정자와 섞어 수정란을 만드는 일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소가 하는 일은 다르다. 미세 조작 현미경 앞에 0.1㎜ 크기의 소 난자를 놓고 가는 빨대로 마치 주스를 빨듯이 핵을 뽑아낸다. 그리고 핵을 제거한 소의 난자를 사람의 귀에서 떼어낸 체세포와 전기로 융합한다. 소의 설계도를 사람의 설계도로 바꿔치기 한 복제 수정란을 만드는 것이다.
박세필 박사가 만들어 미국립보건원에 등록한 배아줄기세포
이 수정란을 잘 성장시키면 신비롭게도 융합된 세포는 난자의 영양물질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체세포를 제공한 사람과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복제배아로 발달하게 된다. 실제로 이 연구소는 이 같은 ‘이종(異種)간 핵이식 방법’으로 인간배아를 복제하는 데 성공해 열흘 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소의 난자를 쓰는 것은 여성한테 난자 채취 동의를 얻기 어렵기 때문.
생명공학연구소장 박세필 박사(43)가 눈총을 무릅쓰고 인간배아를 복제하는 것은 황금과도 같은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다. 줄기세포는 인간의 조직과 장기를 구성하는 210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어 ‘만능세포’로 불린다. 이를 세포나 조직이 손상된 부위에 이식하면 뇌질환, 당뇨병, 심장질환 등 난치병을 고칠 수 있어 21세기 의학혁명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나의 세포였던 복제수정란은 7일 뒤 약 150개의 세포로 구성된 배반포 단계의 배아로 성장한다. 이때 배아는 개체로 성장할 내부의 세포 덩어리와 이를 에워싸는 영양배엽세포로 분화된다. 영양배엽세포는 나중에 태반이 된다. 박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항체로 배아의 ‘영양배엽세포’를 죽인다. 그러면 내부의 세포덩어리만 고스란히 남게 된다. 이를 특수한 배양조건에서 키우면 줄기세포가 된다.
파괴해야 할 배반포 단계의 배아는 크기가 0.12㎜로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손가락만한 태아를 불법적으로 한해에 수십만명씩 죽인다. 끔찍한 인공유산에 대해서는 모두들 눈감으면서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복제배아를 난치병 치료에 쓰려하는 자신을 ‘프랑켄슈타인’으로 만드는 시민종교단체가 박 박사는 원망스럽다. 현재 인간배아복제는 불법이 아니지만, 박 박사는 복제를 일시 중단한 상태다. 18일에도 20여명의 시민단체 회원이 마리아병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현재 선진국 연구팀은 환자 자신의 몸에서 떼어낸 체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들어 손상된 조직이나 장기를 재생하기 위한 배아복제 실험을 계속해 특허를 신청하고 있지만, 박 박사와 그의 국내 라이벌인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는 손을 놓은 상태다.
박 박사는 아직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지 못했지만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키기 위해 만든 잉여냉동 배아에서는 2년 전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줄기세포를 특수한 조건에서 키워 펄쩍펄쩍 뛰는 심장근육세포도 만들고, 신경세포로도 분화시켰다. 그러나 이 줄기세포는 다른 사람의 것이어서 이식거부반응을 피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박 박사가 배아복제방법을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과기부는 ‘줄기세포연구법’을 제정해 치료목적의 인간배아복제 허용을 적극 검토 중이지만 시민 환경단체는 반대하고 있다. 치명적인 병에 걸렸을 때 자신의 세포를 떼어내 손상된 조직과 장기를 마치 붕어빵 찍듯 복제해 이식하는 ‘재생 인간시대’가 열릴 것인지 아닌지가 이 법안에 의해 결정된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박세필 박사는…▼
건국대 축산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친 박 박사는 92년부터 2년 반 동안 소복제의 권위자인 미국 위스콘신대 닐 퍼스트 교수 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복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귀국할 당시 그의 손에 남은 것은 10달러뿐이었으나, 지금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생명공학자이다.
그는 일요일도 없이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한다. 세포가 죽으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지만, 바쁘고 주위의 눈총도 있어 요즘은 성당에 못나간다. ‘세필’이란 이름도 ‘세피리노’라는 유아세례명을 따서 부모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는 “종교의 생명관도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따라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당장 4∼5년 뒤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본격화될 것이고, 복제성공률도 돌리 탄생 당시에는 0.3%였으나 지금은 10∼20%까지 올라갔다는 것. 박 박사는 “사람 그 자체를 복제하는 데는 나도 반대하지만, 치료목적의 배아복제 연구까지 종교와 윤리가 억눌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