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주장하는 개혁은 급진적 파괴주의적 개혁이다.”(이인제 후보)
“이인제(李仁濟) 후보의 비판은 바로 한나라당의 시각이다.”(노무현 후보)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양강(兩强)구도를 형성하며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인제 노무현 두 후보가 개혁노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정체성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중도성향’(이 후보)과 ‘개혁성향’(노 후보)으로만 막연히 분류돼 왔던 두 후보의 논전은 ‘대세론’및 ‘대안론’과 함께 향후 경선 국면에서 주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두 후보가 그동안 TV토론 등을 통해 밝혀온 정책을 되짚어 보면서 두 사람 간의 노선의 차이를 점검해 본다.
▽기업정책〓재계에서 철폐를 요구하는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경우 노 후보는 현행 제도의 골격을 유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이 후보는 기업경쟁력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개선하되 궁극적으로는 제도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집단소송제에 대해서도 노 후보는 일단 정부안대로 시행하다가 적용대상 기업을 점차 확대하자는 입장. 반면 이 후보는 원칙적으로는 집단소송제를 찬성하지만 소송 남용 방지 등의 보완책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쪽이다.
재벌의 은행 소유문제에 대해서도 두 후보는 총론적으로는 부정적 입장이면서도 각론에 들어가서는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이 후보는 재벌의 은행소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하지만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경우에 한해서는 일정조건을 두어 소유지분 규제를 풀자는 신축적 자세. 그러나 노 후보는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철도 민영화 문제에 대해서는 이 후보가 국영기업에서 공사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민영화하자는 쪽인 반면 노 후보는 철도나 전력과 같은 국가기간망 산업의 민영화는 곤란하다는 태도이다. 법인세 인하 문제도 두 후보의 관점차가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노 후보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이 후보는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라는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노 후보는 조세정책의 초점을 기업투자의 활성화보다 빈부격차의 해소 쪽에 맞추고 있다.
▽대북정책〓금강산 사업의 계속적인 지원 여부에 대해 이 후보는 정경분리의 원칙에 따라 수익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의 상징성을 갖는 측면이 있는 만큼 정부의 조치를 이해한다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다.
반면 노 후보는 북한의 개방을 전제로 금강산 개발, 개성공단 건설, 경의선 복원, 전력지원 등 경제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입장이다.
▽외교·안보분야〓두 후보 간의 정책적 차이점이 명확히 드러나는 분야의 하나다. 노 후보는 한미, 북-미, 남북관계에 있어 미국 중심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탈피해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후보는 남북관계는 우리 정부가 주도하더라도 한미간 대북 공조의 강화와 한미연합방위체제를 공고히 유지해야 한다는 데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이 후보는 법 폐지에는 반대하지만 시대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에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조항은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노 후보는 인권침해와 법규 남용의 소지가 큰 만큼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정책〓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이 후보는 언론사도 납세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 그러나 정치적 의도가 있는 세무조사는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후보는 언론사의 대주주 소유지분 제한 문제에 대해서도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난다며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 후보는 일반 기업에 준해 정례적인 세무조사를 실시해야 하며, 언론사 대주주의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데도 찬성하는 입장이다.
▽노동·복지정책〓노 후보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스웨덴과 같은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사정위원회 기능도 더욱 강화해 실질적인 사회협약기구로 만들어야 하며, 중요한 사안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 후보는 청소년,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취약계층의 실업문제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노사정위의 역할에 대해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사정위의 활동이 만장일치를 이끌어내는데 얽매어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된만큼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김정훈 최영해 정용관기자기자 jnghn@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