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끝나고 큰 나라 하나가 혼자 챔피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현실세계의 모습이지만 소프라노의 세계는 다르다. 냉전이 끝난 뒤 저마다 ‘맹주’를 자처한다.
1960년대에는 마리아 칼라스(그리스)와 레나타 테발디(이탈리아)라는 전설적인 두 ‘여신(Diva·최고의 소프라노를 일컫는 말)’이 세계 오페라 극장과 음반계를 양분하며 ‘신경전’ 혹은 ‘냉전’을 펼쳤다. 그들이 퇴장한 지금, 세계는 비슷한 급수의 여걸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래도 올해는 한국 성악팬들에게 행복한 해가 될 것 같다. 대중적 인지도와 활동 면에서 두드러진 두 여신, 르네 플레밍과 안젤라 게오르규가 차례로 예술의 전당 무대를 찾아오기 때문.
28일 공연을 갖는 플레밍은 미국 언론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미국산 프리마 돈나’. 고등학교 성악교사인 부모 아래 태어나 이스트먼 음대를 졸업하고 1988년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백작부인역으로 데뷔했다. 1991년 ‘세계의 오페라 무대’인 메트로폴리탄에 데뷔했고 1995년 음반사 데카와 계약을 한 뒤 이 회사의 간판 소프라노로 15세트에 이르는 오페라 전곡 및 리사이틀 앨범을 내놓고 있다.
같은 미국출신 소프라노 중에서도 바버라 보니, 던 업쇼 등이 여리고 청아한 목소리로 귀를 붙드는 데 비해 플레밍은 메조에 가까운 낮은 공명을 사용, 부드럽고 풍요한 음색을 선보인다. 호흡이 길고 음성의 폭이 넓어 극적인 표현에 능한 점도 장점이다. ‘보그’ ‘바자’ 등 대중 잡지의 표지로, ‘60분(60 Minutes)’등 인기 TV 프로그램이 초점을 맞추는 등 영화배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번 공연의 반주자는 독일 칼스루에 대학 교수이자 세계 피아노 반주학계의 거두인 하르트무트 횔. 연주곡은 구노 ‘파우스트’ 중 ‘보석의 노래’, 드보르자크 ‘루살카’ 중 ‘달에게’ 등 15곡. 3만∼9만원. 02-751-9606∼9610
6월 12일 남편인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함께 공연하는 안젤라 게오르규는 루마니아 출신. 아직 공연까지 3개월여를 남겨놓고 있지만 ‘제4의 테너’라는 말까지 듣는 스타 남편과의 나들이인 데다 10만∼30만원으로 정해진 ‘사상 최고’ 입장권 가격이 갖는 화제까지 더해져 초봄부터 후끈한 열기를 전해주고 있다.
1990년 부쿠레슈티 음대를 졸업한 뒤 1992년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 오페라에 데뷔, 게오르그 솔티의 지휘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히로인이 되어 기립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월드스타로 떠올랐다. 1996년 EMI사와 전속계약을 했고 시칠리아 출신 프랑스 테너 알라냐와 결혼해 ‘떠오르는 신성의 결합’으로 화제를 모았다.
푸근한 목소리의 플레밍과 달리 게오르규는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속에서도 어딘가 ‘불균질’ 하게 들리는 음성이 특색. ‘라보엠’의 미미나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처럼 희생당하는 불운한 여성상 연기가 장기이지만 늘씬한 외모에 힘입어 화려한 배역도 잘 소화한다.
서울공연에서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베르디 ‘운명의 힘’ 중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 푸치니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 등을 노래하며 남편과의 이중창으로는 ‘나비부인’ 등 사랑의 이중창을 선보인다. 02-580-1300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세계 주요 현역 소프라노
이름
출신지
음성의 특징
주요 레퍼토리
르네 플레밍
미국
풍요하고 부드러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백작부인역
안젤라 게오르규
루마니아
촉촉하고 서정적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비올레타역
바바라 보니
미국
가볍고 투명
슈만 그리그 등의 서정가곡
조수미
한국
밝고 단단하며 화려
모차르트 ‘마술피리’ 밤의여왕역, 베르디 ‘리골레토’ 질다역
제시 노먼
미국
중성적 음색. 스케일이 큼
미국 가곡에서 프랑스 오페라, 바그너 악극까지를 망라
베셀리나 카사로바
이탈리아
단단하며 남성적
벨리니 로시니 등의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