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하던 공장 주변지역이 지역개발에 따라 아파트촌으로 바뀐 후 공장에서 나오는 각종 공해 문제로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환경오염원과 피해주민간의 ‘선후주자’ 논쟁이 일고 있다. 서울 강서구 가양1동 소재 대상(구 미원) 김포공장과 제일제당 김포공장에 인접한 아파트촌 주민들이 공장에서 나오는 각종 악취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는 것도 그 한 예다.
▽현장〓19일 오전 가양1동 도시개발아파트 4단지 일대. 여러 개의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가 동네를 뒤덮었다. 연기는 풍향에 따라 학교 쪽으로 퍼지다가 아파트촌으로 방향을 바꾼다. 길을 따라 걷는 동안 간장 달이는 냄새가 느껴지다가 청국장 냄새, 약한 소독약 냄새 등 코에 스며오는 냄새는 조금씩 달라졌다.
이곳에는 옥수수를 원료로 전분 물엿 과당 포도당 등을 생산하는 대상 김포공장(1만7000여평)과 다시다와 핵산조미료 등을 만드는 제일제당 김포공장(3만2000여평)이 맞붙어 있고 1만여가구가 입주한 아파트단지와 중고교들이 공장들을 에워싼 형태로 밀집해 있다.
92년 도시개발아파트가 지어진 직후부터 살아왔다는 주민 박부자(朴富子·59)씨는 “저녁 무렵엔 암모니아 냄새, 아기대변 냄새 등이 나기도 하고 날이 흐리면 냄새가 더 심해진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회사측은 물론 구청 서울시 등에 수 차례 민원을 한 데 이어 1월에는 박씨 등 이 지역 영구임대아파트 3개동 주민 250명이 중앙환경분쟁조정위에 정신적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재정신청을 냈다. 최근에는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해 쉬쉬하던 인근 대형아파트 주민들도 가세할 태세다.
▽회사측 주장〓두 회사는 △최근 악취방지시설을 신설했으며 △악취가 법적 허용치(2도)를 넘지 않았고 △아파트촌보다 먼저 건설된 공장을 이전할 경우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이 호소하는 ‘악취’의 실체에 대해 대상 관계자는 “우리 공장은 공정이 간단해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며 “최근 40억원을 들여 악취 방지시설을 신설한 것이 오히려 주민들의 오해를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일제당 측은 “차제에 제대로 조사가 이뤄져 그간의 오해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회사측이 지난 10년간 환경친화모범기업으로 지정되는 등 악취방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수시로 주민설명회를 열고 공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는 것.
제일제당 김포공장은 68년부터, 대상 김포공장은 76년부터 가동돼왔으며 90년대 택지개발사업시 두 공장부지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양단지에 택지가 조성돼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이에 대해 공장 바로 곁에 주거지역 허가를 내준 행정기관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오염원과 피해자의 ‘선후주자문제’〓소음 진동 악취 등 오염을 내뿜는 공장 등이 오염피해를 주장하는 주민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는 경우 ‘선후주자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선후문제보다는 오염피해의 정도가 문제가 된다는 게 중앙환경분쟁조정위 관계자의 지적이다.
가까운 예로 2월 환경분쟁조정위가 한국도로공사에 배상결정을 내린 경인고속도로변 소음피해사건의 경우 고속도로가 건설된 뒤 신청인들이 빌라에 입주했던 경우다.
2000년 피해배상결정이 내려진 대전 물류센터 차량운행에 따른 소음 진동 매연 피해사건의 경우도 물류센터가 들어선 것은 89년 5월이었고 신청인들은 91년8월 해당지역에 전입했다.
▽전망〓분쟁조정위는 1차 조사에서 악취 피해 개연성을 인정했고 앞으로 정밀조사를 통해 배상액 등을 산정하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1차 조사에 참여했던 박경렬(朴景烈·환경공학) 우송대 교수는 “이번 사례는 과거 웬만하면 참고 지내던 환경관련 분쟁이 봇물 터지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으며 재정결과가 나오면 다른 지역의 유사한 사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결과는 빠르면 4월중 나올 전망이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