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엽기적인 그녀, 공동경비구역 JSA, 두사부일체, 신라의 달밤, 킬러들의 수다, 해피엔드, 반칙왕….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영화의 ‘봄날’을 이끌었던 영화들이다. 관객 동원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한국영화의 ‘힘’을 보여줬던 이들 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 기본기가 갖춰진 배우, 열광적 지지를 보내는 관객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있다.
공통분모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영화 마니아들이 한푼 두푼 모아 만든 ‘네티즌 펀드’를 통해 영화 제작 및 홍보 자금을 모았다는 점. 한국 영화가 거액의 수익을 거두고 이를 분배하는 ‘산업’으로 자리잡은 데는 네티즌 펀드가 막대한 역할을 했다.
네티즌 펀드를 통해 영화는 감독이나 돈 있는 일부 제작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바뀌었다. 영화 관객들은 이제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절반쯤은 생산자인 ‘프로슈머(producer+consumer)’가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투자자와 영화사 사이에 잡음도 많다. 흥행 결과나 비용이 예상과 다른 경우에 특히 그렇다. 일부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네티즌 펀드가 유망한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자 ‘묻지마’ 투자자들이 나타나는 것도 문제다.
▽네티즌펀드 봇물〓개인사업가 박준씨(34)는 지난해 3월 영화 ‘친구’의 네티즌 펀드에 가입했다. 시나리오를 보니 자신이 걸어온 삶과 비슷한 점이 많아 투자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큰돈을 벌었다. ‘친구’가 전국 관객 820만명을 동원하는 신기록을 세운 뒤 1차 정산을 통해 수익을 배분했던 것. 그는 1000만원을 투자해 10개월만에 원금을 빼고도 1900만원을 벌어들였다. 조만간 2차 정산을 통해 다시 70%가 배분될 예정이라 총 수익금은 2500만원이 될 전망.
‘친구’의 공모 대행사였던 심마니(simmani.com) 엔터펀드는 지금까지 14개의 네티즌 펀드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킬러들의 수다’의 경우 1억5000만원을 모았는데 공모가 시작돼서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5초.
인터파크(interpark.com)도 쇼비즈펀드를 통해 꾸준히 네티즌 펀드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엽기적인 그녀’로 165.72%의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펀드 결성 실적은 14건.
이 밖에 무비스톡(movie-stock.co.kr) 지팬(gfan.net) 인츠필름(intzfilm.co.kr) 명필름(myungfilm.co.kr) 등이 네티즌 펀드를 결성하고 있다.
심마니 엔터펀드의 투자담당 허태구 팀장은 “현재 1만명 이상이 한 번이라도 네티즌 펀드에 가입한 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개인은 재테크, 영화사는 마케팅 수단〓네티즌 펀드는 단순히 공모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주식과 비슷하게 영화에 투자한 사람끼리 해당 사이트를 통해 거래를 하는 기능도 있어 주식을 대체하는 재테크 수단이 되고 있다.
네티즌이 송금한 투자금은 사이버머니로 바뀌어 해당 사이트에서 거래된다. 당초 1만원짜리였던 ‘친구’의 주식은 한때 3만2400원까지 값이 뛰기도 했다. 반면 2000년에 개봉된 ‘휴머니스트’는 1만원짜리가 4000원 이하에서 거래되다가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
영화사와 투자사는 펀드 모집을 통해 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네티즌들을 ‘입소문 마케팅’에 동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네티즌 펀드는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소외된 예술영화 콘서트 음반 뮤지컬 온라인게임 마당놀이 오페라 등 문화산업 전반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 ‘박화요비 라이브 콘서트’ ‘뮤지컬 하드락카페2’ ‘온라인 게임 공작왕’ 등이 대표적이다.
▽수익분배 논란〓지난해 활발히 네티즌 펀드를 모집했던 여러 사이트 가운데 현재 공모를 중단한 곳이 많다. 지난해 투자했던 상품들에 대한 정산이 진행되면서 큰 손실이 발생한 펀드에 대해 투자자의 항의사태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 영화사가 내걸었던 예상수익이나 알려진 극장 개봉관 및 관람객 수, 예상 홍보비용 등과 다른 결과를 내놓자 일부 투자자는 소송까지 걸겠다며 벼르고 있다.
이 문제는 자칫하면 꽃봉오리를 맺은 한국 영화산업이 채 활짝 피기도 전에 시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따라 최근 공모사들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 중이다. 운영진과 투자자가 정기적으로 만나 상품의 현황을 공유하는가 하면 흥행 실패에 대비해 일정액을 보전해주는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박준씨는 “자신이 관심 있는 문화분야에 대한 지지를 보낸다는 심정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심마니 엔터펀드의 공모작 현황공모작수익률(비고)화양연화10%리베라메12%자카르타26%(추가정산 예정)눈물-61%(추가정산 예정)그녀에게 잠들다0%친구230%(추가 70% 예상)파이란-45%(추가정산 예정)휴머니스트-64%(추가정산 예정)툼레이더정산준비중킬러들의 수다50%이상 예상두사부일체80%이상 예상마리이야기정산준비중로스트메모리즈개봉중성냥팔이소녀의 재림미개봉자료:심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