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햇살이 눈부신 나른한 오후. 노부부 둘이서 당구 포켓볼대 앞에서 큐를 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볼을 집어넣는다. 노부부의 모습이 얼마나 다정하던지 옆에서 당구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할 목적으로 연습에 몰두하던 수련생들도 큐를 놓고 누가 이길까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조형원(70)-권중희(70·서울 송파구 삼전동)씨 부부. 이들 부부는 당구를 치기 위해 일주일에 세차례 서초동에 있는 한국당구아카데미(www.kbac.co.kr·02-598-3878)를 찾는다.
이들 노부부가 당구를 정식으로 배운 때는 97년. 부부가 다니던 송파노인복지관에 당구대가 3개 있었지만 아무도 칠 줄 몰라 무용지물이었단다. 어느 날 손형복 당구아카데미원장이 무료강습을 했는데 그 때 가장 잘 따라 한 수강생이 바로 조씨.
그때부터 당구에 빠져들게 됐다.
조씨는 89년 위 절제수술을 시작으로 91년 폐, 97년엔 대장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거푸 받아 몸이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당구를 시작하고 나서 정상인 못지않게 생활하고 있단다. “당구를 쳐보니까 전신운동이 되는구먼, 늙어서 집에만 가만히 있을 필요가 없지.” 조씨의 당구예찬이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따라서 당구를 치게 됐다는 권씨는 이제 실력에서 남편 못지 않다.
“여자들은 나이가 먹어도 질투가 많아서 그렇다”는 게 조씨의 설명.
권씨도 “당구 치면 식욕도 좋아지고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남자들이 왜 이렇게 집에 늦게들어오는지 이유를 알겠다”고 남편 못지 않게 당구의 장점을 든다.
조씨 부부는 항상 손을 꼭 잡고 당구아카데미에 들어와 2∼3시간 동안 포켓볼을 친 뒤 다시 손을 잡고 나선다고….
예전엔 뭘 하셨던 분들일까? 충남 당진에서 과수원을 크게 하다가 은퇴하고 조씨 건강에 문제가 생긴 뒤로 서울로 올라왔단다.
“큰애(조병림·47·당진송암농협과장)가 그래요, 우리하고 한번 당구쳐봐야겠다고….”
전 창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