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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생명이다]펑펑 낭비되는 현장

입력 | 2002-03-20 18:09:00


22일은 제10회 ‘세계 물의 날’.

유엔이 우리나라를 물부족 국가로 분류한 가운데 인구증가와 산업화에 따른 용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극심한 봄가뭄 속에 맞는 물의 날을 계기로 우리 물 사용의 현주소, 수자원 현황 및 물관리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3회에 걸쳐 내보낸다.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세차장. 5대의 승용차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세차장 직원의 손에 들린 세차용 건(gun)에서는 ‘쏴’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 물줄기가 연방 뿜어졌다. 직원들은 불을 끄는 소방수처럼 먼지에 찌든 자동차에 물을 쏘아댔고 그 때마다 하얀 물안개가 하늘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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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평소 70∼80대 정도 세차를 하고 있지만 요즘 같이 황사현상이 심할 때는 100대 안팎을 세차한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한 특급호텔 사우나에는 20여명의 외국인을 포함한 수십명의 남자이용객이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벽에 설치된 샤워기를 사용하는 이용객들은 하나같이 물을 틀어 놓은 채 머리를 감거나 양치질을 했다.

어떤 손님들은 샤워기를 틀어 놓은 채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한증막 속으로 사라져 관리직원들이 일일이 샤워기를 잠그고 다녔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A특급호텔의 사우나와 수영장의 1일 물소비량은 160t인데 비해 이용객 수는 180명 정도여서 손님 1인당 물소비량은 0.9t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가뭄으로 농촌에서는 밭작물이 말라죽고 현재도 14만여명이 먹을 물조차 없어 제한급수를 받는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물 낭비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물 사용량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1인당 하루 급수량은 395ℓ(98년 기준)로 미국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독일(168ℓ)이나 프랑스(212ℓ)의 2배나 된다. 그러나 1인당 물 사용량은 326ℓ로 일본의 355ℓ보다도 적다. 이처럼 급수량과 사용량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하루 70ℓ가량의 ‘깨끗한 물’이 정수장에서 가정이나 산업체의 수도꼭지로 오는 동안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 상수도 누수가 가장 심한 경남 마산시의 경우 누수율이 35%가 넘는다. 이렇게 땅속으로 사라지는 물만 해도 전국적으로 연간 8억5900만t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물 사용량이 많은 것에는 이처럼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가 물 낭비가 심한 것은 주부들도 인정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전국의 주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3%가 ‘물을 절약하지 않거나 물 절약 운동에 무관심하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물 낭비는 공업용수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의 공업용수는 2001년 기준 33억t으로 산업구조가 과거의 물을 많이 사용하는 중화학공업에서 첨단기술산업으로 전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물 낭비가 가장 심한 분야는 농업부문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용수 수요량 340억9000만t중 농업용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46%인 158억7500만t. ‘수자원관리정책의 정부 실패’에 관한 논문을 쓴 고재경 박사는 “농업용수는 관거가 아닌 농수로로 공급되고 있어 낭비되는 양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농업용수의 낭비는 수리시설의 노후화와 부실한 유지관리제도에도 큰 이유가 있지만 물이 공짜라는 농민들의 의식에 기인하는 점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1988년까지는 농민들이 이른바 ‘수세’라는 이름의 농지조합관리비를 냈으나 농민들의 수세폐지운동이 성공을 거둔 후 낭비현상이 더욱 만연돼 농촌지역은 만성적인 물 부족을 겪게됐다는 것이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