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가운데서도 누구나 가까운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며 삶의 환경을 살펴보면 그 변화의 속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서양의 과학 기술문명이 과거 250여년에 걸쳐 만들어낸 변화는 그전까지 인류 역사가 경험한 전체 변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 한국이 본격적으로 참여한지 반세기가 채 안 되지만, 요즘 우리 생활 환경의 변화는 훨씬 더 빨라져 매일매일의 삶의 경험이 그저 놀랍고 혼란스러울 뿐이다.
웬만한 중산층 아파트에 있는 목욕탕은 옛날 왕들이 와서 보면 부러움을 금치 못할 것이고 근로자들이 타고 다니는 자가용 자동차를 보면 틀림없이 과거 귀족들이 헛살았다고 소리칠 것이다.
▼정치구조 등 전근대성 여전▼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번 이룩된 사회적 기제(機制)나 의식은 좀체 변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빚어지는 모순과 갈등은 엄청난 무게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물질적 조건의 충족만으로 자신있게 행복하다고 여길 성인들이 얼마나 있을까 의문이지만, 어떤 조사에서 대부분의 청소년이 한국사회를 타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보도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이러한 사실들은 크게는 문명 비평 시각에서 빈곤과 전쟁문제에까지 이어지는 분석으로 연계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작은 시각에서 당장의 문제들과 연결시켜보는 것이 상식적일 듯하다.
우선, 얼마 전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사람이 정직하지 못한 정치자금수수 사실을 공개하고 양심선언을 했다가 낭패를 당하고 중도 하차한 일이 있었다. 동기가 어디에 있었든 그 자체는 충격적이고 신선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한국 정치의 어두운 일면을 개혁해보고자 한 것으로 본다면, 그가 이른바 왕따를 당하듯이 정치권에서 외면당한 것은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외치는 정치판에서 아직도 얼마나 전근대적인 정치습속이 남아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주가의 판단기준의 하나로 해당 기업 경영자의 능력을 따지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어느 기업이 정권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갖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부 언론기관도 대통령의 출신지역에 따라 중요한 인사가 이뤄져 온 것이 관례였다.
이런 예들이 시사하는 것은, 아직도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도적 규범은 전근대적인 수령제적인 지배습속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과학기술사회가 움직여 나가는데 필요한 합리성과 계산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수령제의 권력은 원시사회에서 흔히 보는 바와 같이 상호 호혜적인 선물 교환으로 경제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권력작용에 의해 집권적으로 물질적 수요를 분배해 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체제다.
한국에서 이것은 개발연대의 신중상주의(新重商主義)적 체제에 그 현대적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체제는 물량적인 의미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하면 그것으로 일단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오늘날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것과 같이 체제의 위기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그러한 체제가 문제를 유발하게 되는 것은 안으로 초기 개발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분화된 경제구조에서 새로운 기술인력이 투입되면서부터이고, 밖으로는 수요공급이 가격을 매개로 하여 결정되는 시장경제에 본격적으로 접목되면서부터였다. 이리하여 수령제적 전통이 합리성과 계산성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가히 무규범 사회라고 할만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합리성 통하는 사회 언제쯤…▼
이런 전통이 확대 재생산된 것이 과거 10년의 무실한 세월이었고 보면, 앞으로도 그 질곡에서 쉽사리 벗어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이미 경제에서도 주가의 이유없는 오름세라든가 계산이 안 되는 가계대출의 증폭이라든가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거품현상이 감지되고 있어서 권력습속에 따르는 의식내용이 좀체 가시지를 않고 있다.
이에 더하여 아직도 광의의 합리적 기본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맞고 있는 경제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한때는 남북관계의 개선에 기대를 걸었다가 이제는 월드컵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다고 하여 낡은 뿌리 위에 어떤 기적같은 열매가 맺히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보다 더한 올림픽을 치르고도 별스러운 변화를 유도해내지 못한 이유를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