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산업 민영화를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한 발전산업 노조원들은 오늘로 파업 한 달째를 맞았다. 단기간에 파업이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13일 노사협의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장기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노사가 서로 힘 겨루기를 하는 인상이다.
지금 세계는 무한경쟁시대다. 우리가 경쟁체제에서 조금이라도 주춤거린다면 곧바로 낙오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뉴질랜드 같은 나라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무원이 하던 일도 민간인에게 용역을 주어 업무의 효율화와 국가 경쟁력의 확보를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 발전회사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경쟁체제 도입이 불가피하고 또한 민영화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발전산업 노조원들이 현장을 떠나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투쟁을 벌이게 된 배경을 전기 기술인을 대표하는 대한전기학회의 회장으로서 그 충정을 이해할 수 있다. 직장에 남아 있는 동료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그들이 장기간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신뢰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12일 저녁 노사협의 과정에서 ‘조합원의 신분 변동시 노조와 어떤 방식으로든 실효성있는 절차를 마련하고…’란 문안에 잘 함축되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사태 때 구조조정이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우리 국민 모두가 인식했다.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을 살펴보면 발전산업 노조원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연구인력과 생산현장의 기술자가 최우선 퇴출대상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주도해 온 그들이었음에도, 어려울 때 가장 먼저 피해자로 전락했음을 발전산업 노조원들은 보았던 것이다.
민영화는 곧 그들의 실직을 의미한다고 인식하지 않겠는지, 사용자 특히 정부 당국자는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인 대책도 중요하지만 이런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는 근본적이고도 일관된 정책이 발전회사 노조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최선의 무기라고 생각한다. 발전회사는 민영화 단계에서 조합원의 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발전산업 노조원들에게 호소한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 전력산업을 세계 일류로 키워온 것은 누구인가. 경쟁국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훨씬 값싼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경제 발전에 원동력을 제공한 것이 누구인가. 바로 지금의 노조원들이고 그들의 선배들이었다.
노조원의 권익을 위해 단체협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파업이라고 알고 있다. 이제 노조원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노조원이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충분히 인식시켰다. 그래서 파업목적은 상당히 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파업의 이유를 이해하는 사람조차 이제는 파업을 종식시키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보고 있다.
곽희로 숭실대 대학원장·대한전기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