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성취하고 추구하면서 남을 위해 힘써 일하는 데서 인생의 참 기쁨을 맛봅니다.”
공직과 민간기업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했던 전문직 종사자들이 퇴직 후 현직에서 쌓았던 경험과 능력을 되살려 소외 계층을 돕는 ‘황혼기 자원봉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 정주섭 前고교교장
복지관-문화원 찾아가 노인-주부에 영어교육
98년 2월 용산고 교장직을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난 정주섭(鄭胄燮·70·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요즘 은평문화원 은평복지관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보람에 푹 빠져 있다. 수강생은 비록 노인과 가정주부들이지만 배우는 열의만큼은 어린 학생들 못지 않다.
정씨가 자원봉사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10월. 퇴직 후 남서울대학에서 2년간 교양영어를 강의했지만 이마저도 그만두게 되면서 정씨는 무조건 집 근처에 있는 사회복지관을 찾아 자원봉사를 자청, 영어강의를 허락받았다.
“집에서 놀면서 무기력하게 인생을 끝낼 수는 없었지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 남에게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최근 교육부가 주관하는 퇴직자 봉사활동 프로그램인 ‘평생교육 자원봉사단’에 참가신청서를 낸 정씨는 “남을 위해 봉사를 하면 희열도 느끼고 마음과 몸도 더 건전해지는 것 같다”며 “기력이 있는 한 봉사할 각오”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 강인철 前제약사 부사장
노인대학 부학장 맡아 한국사-세계여행 강의
모 제약회사 부사장 출신으로 95년 퇴직과 동시에 자원봉사에 뛰어든 강인철(姜仁喆·57·서울 마포구 동교동)씨도 최근 ‘평생교육 자원봉사단’ 신청을 마치고 제2의 자원봉사 인생을 시작했다. 퇴직 후 마포구 서교동 성당 부설 노인대학인 ‘성지대학’ 부학장을 맡으면서 한국사 강의와 사물놀이패 지도를 해 온 강씨는 특히 고교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세계 여행 체험을 강의하며 청소년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주고 있다.
회사 근무 시절 세계 여행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온 강씨는 퇴직 후 유럽 중앙아시아 남미 등 세계 70여개국을 돌아보며 체험한 여행기를 3년 전부터 마포구 관내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20여 차례 강의했다.
인도여행기인 ‘혼돈, 사람과 신들의 나라’를 비롯한 9권의 기행문을 출간하기도 한 강씨는 “젊은 시절부터 퇴직 후 이웃들을 위해 자원봉사하기로 결심했었다”며 “제2의 인생을 소외된 이웃에게 도움을 주며 마무리하려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씨와 강씨가 참여할 ‘평생교육 자원봉사단’은 현재 전국 16개 시도에서 400여명의 전문직 퇴직자들이 참가 신청서를 이미 제출했지만 모집정원 1500명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은 교육인적자원부가 평생교육 기반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사업.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축적한 퇴직자가 평생교육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지역사회의 평생학습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
다음달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자원봉사자로 선정되면 5월부터 연말까지 노인이나 가정주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 컴퓨터교육, 무료 법률상담, 성폭력상담, 금연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다.
자원봉사 신청은 서울지역의 경우 마포평생학습관(기영도 관장, 02-3141-6988), 지방은 16개 시도 평생교육 정보센터에서 할 수 있고 마감은 이달 말. 평생교육센터 인터넷 홈페이지(http://ncle.kedi.re.kr)에서도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