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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블레어총리,노동당내서도 따돌림

입력 | 2002-03-24 20:05:00


지난해 대(對)테러전쟁 초기 활발한 외교로 영국 내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윈스턴 처칠 총리 같다”는 찬사를 들었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그가 6개월 만에 사면초가에 몰렸다.

거듭되는 악재로 지지도가 ‘날개 없는 추락’을 보이는 데다 노동당 내에서조차 ‘왕따’를 당하고 있기 때문. 급기야 물러나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물러나라’〓영국 선데이타임지는 24일 영국인의 과반수가 그의 총리직 수행에 실망했으며 다음 총선까지는 사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2277명 가운데 △54%가 그의 총리직 수행에 실망했으며 △20%는 즉각, 43%는 다음 총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답하는 등 63%가 사임을 바란다고 전했다. 특히 노동당 지지자 가운데 3분의 1이 그에게 실망했다고 답했다.

당내에서는 그에게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 움직임마저 감지된다. 선데이타임스지와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노동당 의원들이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나 찰스 클라크 의원을 블레어 총리를 대체할 당수로 내세울 조짐이 보인다고 전했다.

가디언지는 노동당 내 주류 의원들도 블레어 총리 교체에 공감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직은 교체 움직임이 조직화되지는 못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왜?〓블레어 총리는 ‘친구’ 사이로 자처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배신’에 결정타를 맞았다. 블레어 총리는 9·11테러 직후부터 부시 대통령 못지않게 열심히 뛰며 대테러전쟁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확전론을 흘리면서 영국 내 여론이 차갑게 돌아섰다. 선데이타임스 여론조사에서 영국민의 59%는 미국의 대이라크 군사행동에 영국이 지원하는 것을 반대했다. 130명의 노동당 하원의원은 영국의 미국 지원을 반대하는 동의안에 찬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시 대통령의 수입철강 고율 관세부과 정책 발표가 블레어 총리를 더욱 코너로 몰았다. 영국 언론에는 ‘일방적인 대미 퍼주기’ ‘영주(부시)와 가신(블레어) 사이’ ‘블레어의 부시 짝사랑’ 등 블레어 총리를 비꼬는 말이 난무했다. 앨리스 매흔 노동당 의원은 “영국은 미국의 애완견 노릇을 그만 하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국내적으로는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우파적 정책을 밀고 나왔던 게 노동당 지지자들로부터 점수를 잃었다. 최근에는 그가 노동당에 정치헌금을 한 인도 태생의 사업가 락스미 미탈이 루마니아 국영제철소를 인수하도록 루마니아 총리에게 편지를 써준 게 발단이 된 ‘스틸게이트’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야당인 보수당은 미탈씨가 소유한 미국 내 업체가 이번 수입관세 부과를 위해 로비를 했다며 블레어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성장과 복지를 결합한 ‘제3의 길’의 내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한 뒤 지난해 재선까지 성공한 젊은 지도자 블레어 총리. 앞으로 그가 가야 할 ‘제3의 길’은 좁고 험한 길이 될 것 같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