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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지만원/군화 끈을 조여라

입력 | 2002-03-25 18:14:00


수도방위사령부는 서울을 지켜주는 총사령부요, 대통령의 근위대다. 이런 부대에 들어가 초병들을 포박하고 소총을 탈취한 범인이 겨우 23세의 대학생이라는 데 충격이 크다. 해병이라면 군기가 강해 ‘귀신 잡는 해병’으로 불린다. 더구나 최전방을 맡고 있는 해병부대에 대학생들이 다시 들어가 400발의 실탄을 훔쳐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두 부대가 이 정도라면 다른 부대들은 오죽할까.

▼군, 총체적 기강해이▼

군의 태만은 해병대에서 절정을 이룬다. 수방사 총기탈취사고가 난 후 군에는 경계강화 지시가 내려졌지만 해병부대는 한밤중이었다. 탄약고 경계는 어느 부대에서나 경계 순위 제1번이다. 그런데 최전방 해병부대는 탄약고에 초병마저 세우지 않았다. 더구나 수방사 총기 피탈 사건 직후 군은 수사차원에서 전군 부대에 ‘재물조사’를 통해 실탄 분실 여부를 파악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 해병부대는 재물조사에서 실탄이 없어진 사실이 확인됐지만 묵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사가 완전히 풀린 것이다. 해당 부대는 도난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군에는 기본 좌우명이 있다. ‘싸움에서 패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경계를 소홀히 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경계 소홀은 태만이며, 태만은 조직의 암이기 때문이다. 일본 마쓰시타 전기의 신화를 이룩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면지를 사용하라는 지시를 어긴 중역에게 강등이라는 중벌을 내렸다. 간부들이 물었다. “회장님, 기업에 많은 손해를 끼친 중역은 기꺼이 용서하시더니 회장님께 올리는 결재 서류에 이면지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중벌까지 내리시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회장이 대답했다. “먼저의 중역은 최선을 다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이면지를 사용하지 않은 중역은 사소한 일에 태만했다. 태만은 개인과 조직에 암이다.”

연이은 군의 태만도 충격적이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태만을 관용하는 수뇌부의 자세다. 태만에 너그러웠기 때문에 또 다른 태만을 부른 것이다. 지난번 태만은 용서하고 이번 태만만 처벌하면 형평성 문제로 불만이 야기된다. 앞으로의 태만을 줄줄이 불러오지 않으려면 엄격한 처벌이 수방사까지 소급돼야 한다.

사람이나 조직은 자극이 없으면 나태해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에 자극을 주기 위해 특명검열단(특검단)을 만들었다. 특검단에는 두 가지 임무가 주어졌다. 하나는 군 전력 증강사업인 율곡사업의 비리를 감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시로 군에 비상을 걸어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는 일이었다. 특검단은 이 두 가지 임무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군에 자극을 주어 태만을 예방하는 내장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5년경 소리소문 없이 특검단이 해체됐다. 그 후 군은 그야말로 자극 없는 나날을 보냈다. 율곡사업마다 말이 많았고, 총기 사건도 빈번해졌다.

이번 잡범들은 특검단이 해야 할 아주 작은 일을 대신해주었다. 군은 이들이 준 교훈을 음미해야 한다. 군에는 최첨단 고가 장비가 널려 있다. 병사에게 소총은 몸의 일부다. 몸의 일부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군이 어찌 최첨단 고가 무기를 제대로 지킬 수 있으며, 어찌 훈련된 적을 대적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잡범들이어서 소총만 가져갔기에 망정이지 만일 첨단 고가 무기를 파괴하려는 공작조가 들었다면, 수십조원의 재산은 물론 인천 나이키 사고 이상의 엄청난 재앙을 당했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쟁 초기에 전투기를 포함한 수많은 우리 무기가 적의 공작조들에 의해 미리 파괴될 수 있다.

▼특검단 부활시켜야▼

특히 문제의 해병부대가 실탄을 탈취당하고도 이를 숨겼다면 이는 더더구나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군 간부들이 국민에게 정직하지 못하면 병사들도 간부들에게 정직할 수 없다. 상관을 속이는 군은 오합지졸의 무리에 불과하다. 군은 지금부터라도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잘못은 용서해도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군율의 새로운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실직자가 늘어나고 파산자가 증가함에 따라 잡범들도 많아질 것이다. 유사 사건들이 재발할 것이다. 지금의 총체적 기강해이로는 국토방위는커녕 잡범들과의 전쟁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병사들이 내는 ‘충성’소리만 믿지 말고 기강과 시스템을 재건해야 한다. 특검단도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율곡비리와 태만은 구조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지만원 군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