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여러 질문을 퍼붓는 경찰관들 앞에서도 왜소한 체구의 사내는 아주 담담한 표정이었다.
“물에 빠져 죽은 게 아니지?”
“예. 차가 물에 빠졌는데도 죽지 않아….”
“아무리 돈도 좋지만 어떻게….”
“저도 몇 번이나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까지는 못 했을 겁니다.”
8개 보험회사에 무려 13억원이나 지급되는 보험을 들어놓고 교통사고를 가장해 자신의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내는 마치 모든 잘못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 사회에 있다는 듯 항변을 늘어놓았다.
경찰에선 단순한 교통사고로 종결 처리된 사건이 여러 보험범죄 조사관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보험금을 노린 살인으로 밝혀진 것이다. 보험범죄 조사관인 나는 뭔가 가슴 뿌듯한 성취감이라도 느껴야 할텐데 왠지 좀체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교통사고를 당하면 기껏해야 피해를 과장해 보험금을 더 타내려던 것이 우리나라 보험범죄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보험금을 노리는 끔찍한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조사하다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돈이든 지위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목표를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집념만이 통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어차피 남들과 부딪히며 살아가게끔 되어 있는 것이 사회생활이라면 서로간의 공정한 룰을 지키는 일, 즉 페어플레이 정신이 가장 기본적인 덕목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예 그걸 잊고 지내는 것이나 아닌지. 그것도 의도적으로 말이다.
다시 보험범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에서 보험범죄로 인해 부당하게 지급되는 돈이 1년에 무려 1조원을 넘는다. 혹 이 이야기가 실감나게 와 닿지 않는다면 교통사고 피해자의 병원 입원율이 무려 일본의 7배에 이른다는 통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아마 누구든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기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는 인식은 전혀 없이 그저 대기업인 보험사의 돈을 한푼이라도 더 많이 받아 내는 것이 삶의 요령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만연되어 있는 것이 서글픈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오죽하면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현직 의사가 교통사고 환자가 자신의 병원으로 오자 마치 자신도 그 차에 타고 있었던 것으로 위장해 입원환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거액의 보험금을 받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 의사는 또 후유 장애 진단까지 자기 손으로 버젓이 발급했다가 결국 구속되고 말았다. 포승에 손이 묶이면서도 ‘내가 뭘 어쨌기에?’하는 표정을 짓던 그의 표정이 좀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물론 월드컵축구경기대회에서의 16강 진출도, 대통령 선거도 페어플레이에 입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페어플레이가 그보다 더 중요하고 절실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영복 손해보험협회 보험범죄조사팀장